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뭘 먹어도 맛있지 않고,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고, 어딘가로 훌쩍 나가고 싶기도 하고.
요즘의 내 기분이 그렇다. ‘blue'
’blue'는 화려한 색도 아니지만 아주 수수한 색도 아니다. 따뜻한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차가운 느낌을 주는 색도 아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모호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색이다. ‘우울하다’는 뜻을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남편을 따라 연고 없는 도시에 와서 산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들은 이곳 생활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남편은 야근과 회식이 많지만 자신의 경력을 쌓고 있다.
나는 ‘아이들 학교 보내면 뭐해요?’라는 질문이 곤혹스럽다. 사실을 말하자면 ‘책 읽고 글도 쓰려고 노력해요.’이지만 이 말을 하기가 어렵다. 특히 ‘글 써요’라는 말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이 없다. 남편은 부끄러울 게 뭐고 자신 없을 건 뭐냐고 그러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처음 이 도시를 왔을 때가 생각난다. 허허벌판 너머로 신기루 같은 건물들이 보였다. 도시의 경계 부분에 신도시를 만들어 놔서 그런지 섬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활동적이지도 사교적이지도 않은 나에게는 맞는 도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섬 같은 도시에 왔으니 할 게 뭐 있겠는가. 책 읽고 어쩌다 글 쓰는 일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의 생활에 나 스스로 필연성을 부여해 본다.
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나의 내면에는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그러니까 우리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 맞이한 새벽들, 지냈던 도시들, 살았던 삶들 모두가 한데 끌려들어 가 책의 페이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고 만다는 위험에 처할 테니까. 만사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오면, 오직 글쓰기로 보존된 것들만이 현실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단어에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