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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Feb 17. 2023

별건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에서

아침 7시가 되면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켠다. 갑자기 밝아진 불빛에 아이들이 눈을 찡긋거리며 몸을 뒤척인다. 첫째 아이는 이불을 다리사이에 끼고 옆으로 누워있다. 둘째는 두 팔을 벌린 만세자세이다. 이제 곧 일어날 시간인데 한밤 중 인 것처럼 곤하게 잔다. 나는 첫째 아이의 봉긋하고 하얀 볼을 쓰다듬으며 엉덩이를 통통 두드린다. 둘째의 작고 낮은 코를 손가락으로 살살 흔들며 입술도 살짝 건드려본다. 그렇게 아이들을 살짝살짝 건드리면 아이들은 움찔움찔거린다. 나는 그 움찔거림을 보며 혼자 웃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별것 아닌 것 같은’ 것들로 나는 자주 마음의 풍족함을 얻는다. 이를테면 아이들의 자는 모습, 오물거리면서 먹는 입, 통통한 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부부사이의 불화는 남편이 사 온 ‘떡볶이’로 해결이 된다. 오랜만에 찾은 친정집에서는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엄마의 된장찌개와 몇 가지 밑반찬이면 충분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8번째 생일날 아이는 뺑소니를 당하고 죽게 된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며칠 밤낮을 정신없이 지내다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빵집을 찾아가서 부모는 분노를 폭발한다. 생일당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부모에게 빵집주인이 전화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아이의 부모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빵집주인은 진심으로 부부에게 사과하며 자신이 만든 빵을 권한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건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에서)     


대단한 선행을 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이 ‘별것 아닌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별것 아닌 것'에서 기쁨을 얻고 '별것 아닌 것'에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 남을 돕는 것은 '별것 아닌 것'에서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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