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로스의 아버지의 유산 중에서
필립로스의 ‘아버지의 유산’은 쉰이 넘은 아들 필립로스가 아버지의 투병생활에서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 글이다. 글은 여든여섯의 아버지가 종양으로 인해 한쪽 얼굴이 마비가 되면서 시작된다. 뇌의 종양은 점점 아버지의 육신을 점점 무너뜨린다. 죽음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가파르기만 하다. 당황스럽고 서글프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글은 마무리가 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기보다는 삶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병으로 육신과 정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쓰고 있지만 그 모습을 마주하면서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고,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좋은 글이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고 했다. 이 책이 그렇다.
필립로스의 아버지의 유산 중에서
그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의 들것을 따라 병실로 가, 그들이 아버지를 내려놓은 병상 옆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군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그래도 그것은 아직 아버지 손의 촉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그래도 그것은 아직 아버지의 이마처럼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이제 귀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다. 다행히도 그날 아침 내가 아버지한테 한 말 가운데 아버지가 이미 알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