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경철 Jun 16. 2023

두려워하는 것은 길 끝에 놓인 것보다 길 자체의 상태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중에서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은 1960년대 인도의 케랄라를 배경으로 공산주의, 카스트제도, 불평등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글은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교차해서 글의 중반까지도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떤 일도 그저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합리적인 것도 불합리한 것도, 행운도 불행도, 삶도 죽음도.      


글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은 작가가 중간중간 묘사하는 인도의 후덥찌근한 더위로 인해 서서히 땀으로 끈적이는 옷처럼 숨 막히고 무방비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쌍둥이 남매는 왜 헤어져야 했는지, 쌍둥이 중 남자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지, 쌍둥이의 엄마인 ‘암무’는 31살의 나이에 왜 낡은 여관에서 홀로 죽어야 했는지.      


글에는 '암무'가 꿈을 꾸고 깨어나 ‘작은 것들의 신’을 위해서 우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지 않은 암무. 너무나 분명한 미래이기에 알고 싶지 않다. 그리고 계급, 문화, 관습, 이념 같은 크고 거대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신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작은 것들의 신’을 위해, ‘자신의 쌍둥이’를 위해 운다.      


이 소설은 아룬다티 로이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녀는 사회운동가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두 번째 소설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97년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왔으니 20년이 훌쩍 지나 나오게 될 두 번째 소설은 작가의 연륜만큼, 세상의 부조리만큼, 역사의 거대한 물결만큼 나를 다시 무방비 상태로 해제시킬 것을 기대하게 한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중에서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길 끝에 놓인 것보다 길 자체의 상태였다. 얼마큼 왔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도 없었다. 길을 따라 자라는 나무도 없었다. 길에 그늘을 드리우는 어룽거리는 그림자도 없었다. 길 위를 흐르는 안개도 없었다. 길 위는 맴도는 새들도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앞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곳도, 꺾이는 곳도, 휘어진 곳도 없이, 저 끝이 훤히 보였다. 그려는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여자가 아니었기에 그것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만일 작은 소원 하나를 빌 수 있다면, ‘알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다음 달에, 내년에 어디쯤 있을지 알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