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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Jun 23. 2023

죽죽 찢어서 밥 위에 척척 걸쳐 놓아야 제 맛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중에서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다. 요리를 잘해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으니까 소질이 없다기보다는 흥미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배고픔을 잘 참지는 못하지만 맛에 예민하지 않기에 배가 고프면 되는 대로 배를 채우는 편이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맛집 앞에 늘어선 줄에 합류하는 것은 나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먹방을 보는 것을 즐긴다. 특히 우울할 때 보면 좋다. 너무 많은 양을 먹어대는 먹방은 보지 않는다. 한 끼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행복하게 먹는 먹방이 좋다. 재료를 깨끗한 물로 씻고 필요 없는 부분을 손질할 때는 내 마음도 개운해진다. 타다닥 소리를 내며 도마 위에서 줄 맞춰 썰어지는 재료들을 보면 나도 정돈되는 듯하다. 소금이니, 후추니 하는 양념들이 톡톡톡 떨어지면 흥이 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먹방의 백미는 역시 첫 한 입이다. 한입 가득 넣은 음식으로 빵빵해진 볼, 행복해하며 지그시 감는 눈, 눈가에 번지는 만족감에 맛에 대한 아마추어적인 감탄(죽여준다던가, 끝내준다 던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든다, 먹어봐야 안다던가...)이면 나도 자연스레 그 한 입에 동참하게 된다. 먹는 기쁨은 원초적이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가식 없는 기쁨이다.

       

옆에 두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이다. 부제는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이다. 안동에서만 먹는 음식이 소개되어 있어 음식이름이 생소하지만 정성스럽고 보드라운 요리 방법과 맛에 대한 은근하고 우아한 묘사는 마음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든다.


글 중에 김치를 칼로 썰어 먹는 것과 결대로 길게 찢어 먹는 것은 그 맛이 틀리다는 내용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벽돌색 큰 고무 대야에 절여진 배추를 넣고 김치양념을 치대고 있을 때 그 옆에 붙어 앉아 있으면 엄마는 김치 속 중에서 작은 것을 하나 뜯어 나의 입에 넣어 주셨다. 몇 개 받아먹으면 엄마는 너무 짜니 밥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냅다 밥을 한 공기 퍼와서 밥 한 숟가락을 들이밀면 엄마는 김치를 결대로 푹 찢어 내 밥 위에 얹어 주시곤 했다. 그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 정말이지 칼로 썬 김치맛과는 다르다. 확실히.


김치가 맵다고 아직 즐겨 먹지 않는 아이들의 저녁 밥상에 나는 양념을 좀 덜어낸 김치를 결대로 푹 찢어 올려놓았다. 둘째가 길다고 잘라달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중에서    

 

어릴 적 봄에 바구니 끼고 냉이 캐러 나갈 때 할머니가 내게 쥐어준 건 칼도 호미도 아니었다. 그저 야물고 짤막한 나무 꼬챙이였다. 대추나무나 대나무 꼬챙이를 칼 대신 쥐어준 걸 나는 호미나 칼에 날이 있어 위험을 피하려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뿌리와 잎을 상하지 않고, 쇠로 땅을 헤집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나물을 캐오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김치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되도록이면 칼로 싹둑 자르지 않고 배춧잎을 결대로 죽죽 찢어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죽죽 찢어서 밥 위에 척척 걸쳐 놓아야 제 맛이라 했다. 키가 큰 여름배추쌈을 먹을 때도 엄마는 손으로 반을 뚝 무질러주지 칼로 댕강 자르지 않았다. 파 무침을 할 때도 손가락으로 죽죽 찢었고 오이도 손으로 댕강 분질렀고 쑥갓, 상치 같은 여린 잎은 더구나 손으로 뜯어서 무쳤다. 칼은 무나 호박 같은 큼직한 걸 자를 때나 한 번씩 꺼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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