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가기

by 하경철

둘째의 치과 정기검진일이 다가왔다. 1년 전 신경치료를 받으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 실신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울며 발버둥 치느라 진이 빠진 둘째를 업고 병원을 나서던 기억이 난다. 이후 둘째의 치과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가는 내내 구슬프게 훌쩍거리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호명하면 내 손에 붙들려 반은 끌려가다시피 진료실로 들어갔고, 진료베드에 눕지 않겠다고 버텨서 나의 진땀을 빼게 했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는 심정으로 정기검진을 성실히 다녀서 그런지 그 후로는 간단한 충치치료에서 끝이 났고 둘째의 저항의 몸부림도 점차 줄어들었지만 치과를 가는 것은 둘째에게 여전한 스트레스이다.


나는 예약 없이 토요일에 치과를 방문한다. 토요일에 가면 기존 예약자들이 펑크를 내거나 앞뒤로 진료가 비는 시간을 할애해 진료를 받게 해 준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빨리 치료를 받지만 아귀가 맞지 않으면 2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진료를 빨리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치과가 시작하는 9시에 맞춰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접수라도 빨리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검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진료는 마냥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과 토요일 오전의 느긋함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는 평일의 루틴에 ‘치과진료’라는 불청객을 들이는 것을 피하고 싶다.


내가 언제부터 ‘루틴’에 연연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발령으로 인도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인 것 같다. 그때 첫째는 5살 둘째는 태어 난지 100일쯤이었다. 그전까지 직장을 다녔던 나는 육아도 살림도 초보자였다. 남편은 출장으로 일주일에 절반정도는 집을 비웠다. 매일매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하기 위해서, 타지에서 홀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불안한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어나는 시간, 식사시간, 자는 시간은 늘 동일했다. 시간마다 요일마다 하는 일을 정했다. 갑자기 정해진 약속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했다.


이번 치과 정기검진일로 생각한 토요일, 모처럼 남편이 여유가 있다. 첫째도 아픈 이빨이 있다고 해서 두 명 모두 검진을 보기로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번 토요일 검진에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애들 병원을 더러 같이 간 적은 있어도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가 본 적이 없는 남편은 내 말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다. 나는 첫째는 이빨이 아파서 왔고 둘째는 정기검진일이라고 접수대에 말하면 된다고 하고 9시에 오픈하니 시간에 맞춰가라, 예약 없이 가는 것이니 얼마나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진료를 받으면 그들은 예약자이거니 생각하고 접수대에 괜한 항의랑 하지 마라, 그리고 혹시나 검진 후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가능한 당일에 해 달라고 해라. 치료받는 동안 둘째가 울거나 힘들어해도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 등등 남편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토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서고 9시가 조금 넘어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접수대에서 오늘 예약자가 많아 기다려야 하고 어쩌면 진료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며…. 30분쯤 지나서 또 전화가 왔다. 둘 다 검진을 했다고 했다. 둘째는 이상이 없어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둘째가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춤을 추더라고 했다. 첫째는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10분도 채 안되어 전화가 또 왔다. 첫째도 엑스레이 검사결과 이상이 없고 아마도 영구치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오는 간헐적인 통증인 것 같다고 치료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채 안되었다. 아이들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나는 신이 나서 말하는 남편이 얄밉다.

쳇, 백만 년 만에 한번 치과 데리고 갔는데 기다리지도 않고, 험한 꼴도 안 보고, 운이 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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