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아니 에르노

by 하경철

결핍과 가난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나란 인간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내가 모르는,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몸에 밴 그 무엇은 무엇일까?

그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아니 에르노가 제시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당연히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문학적 소재로 삼아 자서전과 소설을 혼합한 형태로 글을 썼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은 각인된 기억의 파편을 붙들고 자신을 응시하고 탐구하고 관찰한다.

아니 에르노에게 ‘부끄러움’은 사춘기 시절 현실을 직시한 그녀의 수치심과 두려움의 고백록이며 그 시대의 모순과 치부를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처절한 감정도 큰 소리도 내지 않는 그녀의 진술은 솔직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근원적인 질문과 새로운 관점을 날카롭게 들이민다.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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