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을 갔다. 크리스마스에.
10시에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나오니 11시 30분 정도 되었다. 남편이 봐 둔 곳이 있다고 거기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스파게티와 피자를 판다고 했다. 가게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설렁탕집이 보였다. 설렁탕이나 먹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반응이 싸하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들이 보인다. 수저로 테이블을 탕탕 치는 아이에게 앳댄 엄마가 조용히 하지 않으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아이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결국 밖으로 끌려나갔다. 얌전히 아기의자가 앉아있는 여자아이에게 아빠가 면과 고기를 잘게 잘라서 접시에 놓아주고 엄마는 아기에게 먹인다. 아이가 어릴 때, 내가 젊은 엄마로 보일 때 나는 언제쯤 식당에서 맘 편히 밥을 먹나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우리 아이들을 본다. 세월이 빠르다. 너무.
밥 먹고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제 중학생이 되는 첫째는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둘째는 언니가 그렇다면 자신도 그와 같단다. 집에 돌아오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사둔 초콜릿케이크를 꺼내 촛불도 켰다. 내년 한 해 바라는 것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말한 뒤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먹었다. 다들 맛있다고 했지만 절반도 먹지 못했다. 두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요청한 틴케이스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목욕탕이나 갈까 하고 말했다. 남편은 좋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마스에 목욕탕을 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탕 주변을 빙 둘러 앉아 있을 때는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먼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다가 한 명이 일어서서 나가면 일제히 그 사람의 뒷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도 보인다. 오동통하고 작은 아기들의 모습을 보며 늙은 엄마들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아기의 그 감촉을 회상하고 젊은 시절의 추억이 스친다. 탕 물에 때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여서 나는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목욕탕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목욕탕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는 줄 몰랐다고. 나도 그랬다. 찜질방을 겸하고 있는 곳이라 가족단위로 찜질방을 간 것일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엄마 아빠가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시던 때가 지금 내 나이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날 풀리면 남편이랑 주말에 등산을 다니자고 했다. 등산 갔다가 점심 먹고 목욕탕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