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커트 보니것)

by 하경철

사실 :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진실 : 거짓이 없는 사실


사실은 이렇다. 드레스덴 폭격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에서 마지막 몇 달간 미국과 영국이 독일 드레스덴시를 대규모 폭격한 사건이다. 폭격과 그로 인해 발생한 화염폭풍으로 드레스덴 도심의 40㎢가 파괴되었으며, 22,700명에서 2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제5도살장의 저자 커트 보니컷은 그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그곳 드레스덴에 있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도시만 파괴된 것이 아니다. 사람만 죽은 것이 아니다. 파괴된 도시는 커트 보니컷의 표현에 따르면 ‘달 표면’처럼 변했고 죽음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살아남아 그것을 목격한 빌리 필그램(제5도살장의 주인공)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인 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정신병이라 불리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만든 그 가공의 세계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은 볼 수 있다.

진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진실은 감추어져 있다.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볼 수 있다.

사실은 말하기 쉽다.

진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는 말로 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진실이 사실에 비해 애매하고 까다로운 것은 그 진실이 누군가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팀 오브라이언)’에는 ‘기억을 지탱하는 건, 흔히, 시작도 끝도 없는 작고 기이한 파편들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것을 경험한 개개인에게 시간이 흐를수록 파편들로 남지만 그 파편들이 오랜 세월 박혀있어 상처를 내고 흉터를 낸다. 진실은 그 흉터에서 드러나고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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