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상징을 만든 서체 이야기
서체 선택은 어떤 디자인 작업에서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특히 복잡한 교통 시스템에서 통근자들이 길을 쉽게 찾도록 돕는 서체라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그런 점에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위대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헬베티카·푸투라·유니버스와 같은 현대 서체들이 널리 퍼지기 훨씬 이전에,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이 런던 대중교통을 위한 서체와 현대 디자인의 상징이라 불릴 만한 로고를 완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존스턴이 서체를 설계하던 당시만 해도, 산세리프 서체는 인쇄 업계에서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존재였습니다. 비록 ‘산세리프’ 혹은 ‘그로테스크’라 불리는 서체들이 이미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부터였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존스턴 산스 Johnston Sans 서체와 런던교통공사 TfL의 라운델 Roundel (일명 ‘불스아이 Bulls-eye’ 로고)은 지금도 런던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도시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하철역 입구, 포스터, 버스, 자전거, 트램, 선착장 등 런던의 모든 교통수단에서 마주치는 이 시각 요소들은 Mind the gap 안내 방송만큼이나 친숙합니다.
이 서체는 1913년, 당시 런던 지하철 UERL의 이사였던 프랭크 픽 Frank Pick의 의뢰로 개발되기 시작해, 191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분산된 여러 철도 회사들을 시각적으로 통합하고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기업 아이덴티티 Corporate identity 수준의 형식을 갖추길 원했습니다. 그 정체성은 차량과 열차, 역 건물, 그리고 포스터나 광고물에 사용되는 독창적인 서체를 통해 표현되기를 원했습니다. 존스턴은 이를 위해 고대 로마 알파벳의 비례와 전통 캘리그래피의 미감을 기반으로, 당시 시대에 어울리는 단순함과 우아함을 갖춘 서체를 제안했습니다.
당시까지의 인쇄물은 주로 빅토리아 시대의 손글씨를 모방한 장식적인 세리프 serif 서체가 주류였지만, 존스턴은 의도적으로 이런 장식을 배제한 산세리프 sans-serif 서체를 제안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런던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아이코닉한 공공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존스턴은 인쇄소에 대문자 E를 인쇄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할 정도로 섬세한 디자이너였습니다. 그의 서체는 단 하나의 굵기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볼드체가 추가되었지만 그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서체를 ‘지하철 철도용 블록 문자 Underground Railway Block Letter’라 불렀고, 완성된 활자디자인 그 자체보다는 공공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여겼습니다. 이후 이 서체는 사이니지 작업자들을 위한 지침서로 배포되었으며, 목활자와 금속활자로 제작되어 런던 전역의 포스터, 안내판, 광고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스탠리 모리슨 Stanley Morison, 타이포그래피 역사가이자 모노타입 설립자, 1947년 인터뷰
존스턴의 제자였던 에릭 길 Eric Gill은 그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길산스 Gill Sans를 개발했으며, 이는 BBC 로고를 비롯한 수많은 상업 디자인에 사용되며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영국 서체가 되었습니다. 또한, 런던 지하철 시스템에서의 서체 사용은 단순한 시각적 통일을 넘어서, 브랜드 전략의 선구적 사례였습니다. 존스턴의 딸, 프리실라 존스턴에 따르면, 그는 존스턴 자신의 업적 중 하나로 이 서체를 꼽았으며, 그 업적은 오늘날 런던이라는 도시 정체성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영국 도로표지판 글에서도 언급한 디자이너 족 키니어 Jock Kinneir와 마거릿 칼버트 Margaret Calver 역시 존스턴 산스에서 일부 영향를 받아 영국 전역 고속도로를 위한 트랜스포트 Transport 서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시대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다른 서체들이 사용되면서, 브랜드의 일관성이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1979년, 런던교통공사는 디자인 에이전시 Banks & Miles에게 Johnston을 현대화하고 당시 조판 시스템에 맞게 재정비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이후, Johnston100은 1916년 에드워드 존스턴이 디자인한 서체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개정판으로, 모노타입이 런던교통공사 TfL와 협력하여 현대의 사용 환경에 맞게 개선한 서체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존스턴 서체가 지닌 역사적 가치와 조형적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실용성과 확장성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해시태그(#), 새롭게 디자인된 앰퍼샌드(&)와 같은 현대적 기호들이 추가되었고, 다양한 굵기의 서체(weight)를 도입하여 보다 폭넓은 활용이 가능하도록 조정되었습니다.
TfL 측은 기존 서체의 전면적인 재설계를 원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소문자에서 원래의 개성이 희미해졌음을 인식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표현 요소들을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 등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에 따라 새로운 문자 기호의 필요성이 대두된 점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Johnston100은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반영한 결과물로서, 존스턴 서체의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오늘날의 다양한 매체와 용도에 적합하도록 재정립된 서체입니다.
모노타입의 나딘 샤힌 Nadine Chahine, 타이프 디렉터 | 2016년 It's Nice That 인터뷰
오늘날에도 약 900만 명의 시민과 매년 약 3천만 명의 방문객이 발생하는 런던에서, 런던교통공사(TfL)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보는 빠르게 움직이는 승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효율적이고 명확하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뉴 존스턴 서체를 사용 중에 있습니다.
출처
BBC Radio 4 PM. (30 March 2016). Johnston Sans: The Tube typeface that changed everything. www.bbc.co.uk
Creative Review. (17 March 2016). The London Underground typeface at 100. www.creativereview.co.uk/
Vida. (27 November 2020). Typography in Focus: Johnstone Sans, a Typeface for London. vidacreative.co.uk/
Wallpaper Magazine (28 March 2016). Go underground: 100 years of Edward Johnston’s seminal London typeface. www.wallpaper.com
It's Nice Taht. (14 June 2016). Monotype unveils its redesigned Transport for London typeface, Johnston100. www.itsnice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