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by 임진채

요즘에 와서 조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눈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서 조명등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처지다. 비싼 것은 엄두를 못 내지만 그래도 괜찮겠다 싶은 것은 약간의 무리 같은 것은 기꺼이 감수하는 편이다. 그래서 효과하고는 상관없이 조명등의 숫자는 자꾸 늘어간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을 잘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 교무실에 불려 가면 국어 선생님은 항상 코끝에 돋보기를 걸고 그 돋보기 위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그러려니 자연히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은 치켜뜨는 자세여서, 철없는 제자는 항상 특이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높은 도수의 안경을 피해 내 민얼굴을 보시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말씀은 없었지만, 너도 금방 내 심정을 이해할 거여 하시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벌써 그 모습을 이어받고 있다.

그 선생님의 안위를 모르고 산 지 벌써 오래되었다.

그때 선생님은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봄에 열리는 백일장에는 꼭 나를 학교 대표로 보내셨다. 그때는 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3년을 내리 참석했는데도 입상은커녕 입선조차 한 기억이 없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그때 나는 그 맨날 하는 낙방이 부끄럽거나 오기 같은 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 백일장에 단골 낙방 경력이 지금도 이어져 남이 어떻게 생각하던 부끄러움도 모르고 지금까지 끼적이는 짓을 습관적으로 유지(youji)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직은 어두컴컴한 밖을 내다보곤 밤이 이렇게 길어졌구나 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을 나서려는데 말없이 우산을 내미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비로소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밤이 길어진 것도 있지만 비가 내리기에 어두웠다는 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내 신상 이외의 변화에는 전혀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은, 앞으로 수백 번을 백일장에 나가거나,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아무리 오래 쓰더라도 계속해서 낙방하는 게 당연한 일일 것 같다.

가을비는 좀 청승맞다. 이리 기분이 구겨지는 비 내리는 날에는 할머니께서는 항상 콩을 볶아 주셨다. 볶인 콩을 쥐고 약간 힘을 주면 콩 껍질이 벗겨진다. 그걸 입에 넣고 어금니로 쿡 씹으면 코끝에 금방 고소한 내음이 감돈다. 지금도 잊히지 않은 그 그리움이다.

아직 국어 선생님이나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어도, 어렸던 내가 이제는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다. 사는 것이 어려워지는 순간이다. 봐도 안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이치도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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