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by 임진채

치과에 갔다. 왼쪽 어금니 흔들리는 놈은 뽑고, 그 반대편에 전에 뽑아버린 자리에는 임플란트 공사를 하기 위해 일단 지주를 심었다. 내 처지에 공사 대금도 가슴이 아픈데, 이 빌어먹을 새로 이를 뺀 자리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아프다.

여태까지 이렇게 아픈 이를 빼는 공사가 일곱 번째다. 이건 겉모습이 좋아지려고 하는 공사가 아니다. 그냥 봐서는 안 보이지만 이 이들이 없으면 음식을 씹을 수 없어 나는 그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조금 부풀리면 생사가 달린 문제인 셈이다.


이 두 개까지는 정부에서 공사비의 반을 부담해 주지만 그다음부터는 온전하게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지난달에는 내무장관의 무릎 관절 수술에 거의 육백만 원이 나갔다. 마누라님은, 연이은 지출에 잠 못 이루는 내게 자신은 실손보험으로 처리했으니 된 것 아니냐고 한다. 한 이불을 덮고 자도 부부는 어차피 남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실손 보험금을 다달이 내는 이 불쌍한 영감의 고충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더욱이 그 보험금이 앞으로 300% 정도가 인상될 것이라는 소리는 내 마누라는 절대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억울한 면이 적잖다. 우리는 형편에 맞게 부모를 봉양했다. 그런데도, 내 개인의 팔자(八子) 탓이겠지만 나는 선대에서 물려받은 것이 거의 없다. 자식도 둘만 낳았으면 좋았을 건데 나라 장래를 걱정한답시고 하나를 더 낳았다. 대학까지는 이를 악물고 보냈지만, 그 이후는 물려줄 만한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아직 힘을 펴지 못한 자식에게 짐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 새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늙었다. 우리 나이 때 우리 부모는 자식들의 봉양을 당연하게 받았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가망이 있는가?

남자는 우는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배우면서 자랐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소리를 못 했다. 위를 보지 말고 밑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 우리 밑에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우리는 의연한 척 입을 닫아야 하나? 겨우 하루 세끼는 굶지 않고 있으니 이 처지에 감사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참으면 이런 불공정은 느릴지라도 원만하게 바뀔 가능성은 있는가?



배가 고파서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다가 이 뺀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다. 바나나에 벌건 피가 묻어난다.

어느 놈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라 했지?

들을수록 화가 치미는 말이다. 누구 약 올리는 거여? 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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