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거나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냄’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냄’이라는 대목이다. 이 의미 때문에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나도 그런 사실을 믿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는 꼭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여태까지는 두리뭉실하게,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진 사람이면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고 ‘우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단군 할아버지의 후손이면 ‘우리’가 맞다. 그러나 현해탄 건너에서 온 무리거나, 아니더라도 그 무리의 습성에 너무 가까우면 혹시 그쪽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망종(亡種)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라도 하는 게 온당한 정신일 것이다.
평소 같으면 상습적이고 저급한 망동(妄動)일지라도 그들의 질이 그렇고 그러니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변소에 가는 게 귀찮다고 같이 사용하던 강에다 그냥 쉬하는 것도 아니고 큰 것을 내갈기는 지경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에 걸맞은 대가를 꼭 치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위기의 질을 상세하게 들여다보면 가슴을 쳐도 시원치 않을 사실이 있다, 바다 건너에 사는 물건들은 ‘우리’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같은 핏줄이면 사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우리와 같아야 하거늘, 이 변형 쪽발이들이 더 우리를 기겁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그 사악한 무리 중에 국민의 녹(綠)까지 먹는 인간이 뜬금없이 게다(일본 사람들이 신는 나막신) 신고 나서서 손 흔들고 발광하면 그걸 보는 국민의 심사는 오죽하겠냐 말이다.
일벌백계(一罰百戒)라 했다.
아닌 놈은 죽어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