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침저녁으로 마음먹고 걷기 운동하거나 아니면 가볍게 산책하는 길에 군데군데 긴 벤치가 놓여 있다. 젊은 사람은 별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게 보통인데 나이 드신 분들은 앉아 쉬었다 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나이를 먹었을뿐더러 허리가 안 좋아서 벤치 몇 군데를 지정하여 꼭 쉬었다 간다. 이런 시설은 각자 형편에 맞춰서 사용하는 곳이고 그런 의도로 시에서 만든 장소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만, 각자가 지킬 것은 정확하게 지키기에 항상 북적이지만 그래도 아주 쾌적하다.
며칠 전부터 벤치에 누워있는 한 사람이 있다. 신발은 벗어서 발밑에 가지런히 놓았고 메고 다니는 배낭을 베고 반듯하게 누워있다. 옆으로 구부리거나 다른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벗은 신발에는 곱게 접힌 양말이 항상 들어 있다. 신발도 깔끔하다. 물론 입성도 반듯하다. 이른 오전이지만 밤부터 자고 있었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쉽게 말해서 서울역 근방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분들하고는 달라도 아주 다른 모습인 게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누워있지만 지금 자는 건 아니라는 정도다.
지붕이 있는 벤치만 골랐고 한 군데가 아니라 몇 곳을 순환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누워있기도 하고 이미 떠나고 없을 때도 있다. 궁금하다. 그렇다고 물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미 나이를 먹고서도 나는 눈에 익지 않은 모습에 흥미로워한다. 물론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생경(生硬)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보아는 반응도 대개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런 낯선 인물에 대한 내 관심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쓱 봐서 척 알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누구나 일반적인 어떤 틀에서 벗어난 상황에 흥미가 끌리는 건 당연하다 말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다 며칠 후에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내 버릇대로 며칠은 좀 황당하다는 느낌이었고, 상당 기간을 그 일에 신경이 쓰였다.
이런 일이 있으면 나는 항상 어렸을 때의 우리 형제를 떠올린다. 나하고 나이 차가 많은 우리 형은 해남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형은 동생인 나에게 항상 헛다리를 짚는다고 혀를 찼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대목에서 어떻게 아버지가 날 낳으실 수 있느냐고 선생님께 대들다가 종아리가 터질 정도로 얻어맞고 돌아온 나를 보고 형은 말했었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정해진 답을 맞히는 것이 학생이 할 공부라고·····.
우리 형은 성공했다. 나? 그냥 그렇지, 뭐. 나는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