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안 보이던 제비 氏가 돌아왔다. 강남 갔다 따신 봄에 돌아오는 제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걷는 곳곳에 설치된 기구에서 특이한 모습으로 운동하는 한 사람을 내가 부르는 이름이다. 운동기구를 손으로 잡고 발은 자전거 타는 것 같이 젓는 기구에서, 발은 바쁘게 움직이며 손은 기구를 잡지 않고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정통적인 사교댄스의 형식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 숨은 이력에도 그쪽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러니까, 왕년(往年)에 나도 그쪽, 이른바 무도(舞蹈) 계통에 얼씬거린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잘하는 편이었냐고? 그렇지는 않았다. 몸이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아서 유연하지 못한 게 보기에 그저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나를 끌고 간 친구와 어울려 얼마간은 열심히 다녔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곳은 내가 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겠지만 그런 곳을 아내와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현장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을 소개받는 방식이다.
나를 안 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를 본 사람은 내 키가 정도 이상으로 아담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교춤에서 정해진 법은 없지만, 일종의 관습이 있다. 남자가 그윽한 눈으로 품에 안긴 여자를 내려다보며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게 온당한 그림이다. 그런데 스텝을 끌고 가야 할 남자가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움직인다면 예쁜 그림이 되겠는가?
그 얄궂은 모습을 내게 지적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그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았다.
스스로, 자신이 고목에 붙어 있는 매미 같다는 것을 느꼈다면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웃기는 소리다. 내가 생각해도).
누군가가 말했잖은가. 너 자신을 알라고·····. 기특하게도 나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길로 음악 소리가 은근한 세계에서 자신의 의지로 은퇴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까지 다 지운 건 아니다.
두어 달 만에 돌아온 ‘제비’ 氏의 외양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주름이 칼날같이 선 바지를 입었었는데 지금은 한 토막으로 잘린 칠부바지를 입었다. 머리 뚜껑 위에는 마치 야구장의 볼 보이가 썼음 직한 운동모자가 얹혀 있다. (이 표현을 잘 새겨읽어야 한다. 머리 위에 뚜껑이 있고 그 뚜껑 위에 모자가 또 있다는 말이다.)
목에는 짙은 색깔의 선글라스를 줄을 달아 걸었다. 그 선글라스의 집(case)은, 겨우 육군 상병인 헌병(憲兵)놈이 가짜 계급장을 붙이고, 헐렁한 권총집을 옆구리에 차고 으스대는 모습 같았다.
그래도 춤추는 몸짓은 여전히 우아한 편이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저 제비의 일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도 현역으로 밤무대에 뛸 것이라는 믿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고작 기억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작은 조각 몇 개를 귀하게 안고 만지작거리는 정도였겠지 했었다.
늙어가는 우리는 가장 화려했던 과거 영상 몇 컷을 숨 쉬는 내내 주무르며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래, 그게 겨우 남아 있는 낡은 일상인 게다. 서럽게 시리·····.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 내보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지난날을 예측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 사람과 아무것도 공유할 일이 없을뿐더러 같이 앉아 소주잔 부딪치며 나눌 이야기도 없다. 내가 아픈 허리를 토닥이며 산책로를 걷고 있듯이, 저 제비 氏도 잠시 안 보였다가 다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라 안도하고 이 하루에 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나보다는 젊어 보이는데,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혹시 더 참담하게 밀려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요. 친애하는 제비 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