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용하게 비 내리는 날 다소곳이 앉아서 책을 읽고 싶었다.
곽재구 시인의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집이다.
그의 글 중에, 시만 써서 먹고살 수 없어서 쓴 글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꽂힌다.
교수직을 그만둔 지금은 뭘 먹고 살까?
2. 만주 동포들은 자기 남편을 ‘나그네’라 부른다고 한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든든한 벽을 언제 떠날지 기약조차 없는 나그네라고 부르는 그 심정이나 근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곽재구 시인의 글을 읽으며 얻어들은 정보다.
3. 비가 멈추는 듯하더니 그냥 내린다. 장마라니 따로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올 만큼 와야 그칠 것이라는 뜻이다. 내리기는 하되 큰 피해는 없었으면 한다. 장마에 대한 절실한 기억?. 글쎄 아득하다.
4.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왔는데도 비는 끈질기게 내리고 있다. 장마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쳤는가 하면 잠시 후에 우산 쓴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8층에서는 저 밑바닥에 비가 떨어지는 걸 확인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걷는 사람 중에 우산 쓴 사람
이 없으면 나는 비가 내리는지도 알 수 없는 등신이 된다. 험한 세상에 비하면 내가 갖춘 위용(威容)은 엄청 초라하다.
세상에 맞서 싸우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내 친구는, 그런 형편이면서도 지금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내가 희한하단다. 그 자식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쁜 지식 같으니라고·····.
5. 나는 책상 위에도 부분 조명을 한다.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는 궁상이 몸에 밴 탓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더 가증스러워 보인다. 내 눈이, 의사도 그 이유를 모를 정도로 아픈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랑이에 대한 대가가 아닐까 반성한다.
앞으로는 그런 좀생이 같은 짓은 그만둘 생각이지만 몸에 밴 짓이라 장담은 못 하겠다. 빌어먹을!
6. 사무실에 컴퓨터 세 대를 놓고 사용하는 놈은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을 거다. 입을 쩍 벌릴 정도로 기막힌 사연이 있는 게 아니다. 허리가 아파서 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높이를 달리한 컴퓨터를 설치한 것뿐이다. 서서 하는 것, 일반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것, 바닥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하는 것.
세상을 항상 그렇게 철저하게 사느냐고?
그렇지 않다.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인데, 사실이 그렇지 않고 그리 봐주는 사람도 전혀 없다.
그래서 이런 날은 더 움츠러든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