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앞서 걷던 여자분이 손수건을 떨어뜨렸는데 그걸 줍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발로 그것을 조금 높은 곳으로 밀고 갈 생각인 것 같은데 밋밋한 길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 주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이 있을 턱이 없다. 내가 가까이 가서 “내가 주어드리겠습니다” 했더니 자리를 비켜준다.
얼마 전에 허리를 수술했다 한다. 안 들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하고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서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저도 허리가 아픈 사람입니다.”하고 끝냈다.
본의 아니게 나는 허리 부분에서는 우리 아파트에서는 유명 인사가 된 사람이다. 나처럼 구급차를 세 번이나 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농담한다.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엉뚱한 말인데, 119구급차의 성능에 대해서는 지금도 놀라고 있다. 평범한 승합차로만 보이는 그 차가 빨리 달리는데도 안에 탄 환자는 전혀 진동을 느낄 수 없어서, 아파트에서는 죽는다고 고함지르던 나도 병원을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는 조용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상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다.
이런 병의 특징은 날이면 날마다 아픈 게 아니다. 아픈 날은 하늘이 노랗다가 까매지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밥상에 오른 고등어의 출생지가 국내가 아닌 노르웨이란 것까지 알 수 있다. 아플 때는 당장 수슬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통증이 없는 날은 쉽게 내가 환자라는 것을 잊을 수 있다는 괴리(乖離)를 자주 겪는다.
주위 친지들의 권면도 정확하게 반으로 갈린다. 다른 건 몰라도 허리는 그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칼을 들이대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고, 어차피 한 번은 죽을 운명이니 이 앙다물고 참을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이 있다.
나는 반응을 삼가고 있다. 수술 이전 단계에서 하는 시술을 할 때, 엎디어 있어서 불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 밑에 깔려 있던 하얀 시트에 서리처럼 냉랭하던 그 백안(白眼)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살고 죽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냉혹한 외면(外面)이 더 참담했었다.
그래서 지금 어쩌고 있느냐고? 지난 3년을 병원에서 처방한 약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 피조물인 인간의 생(生)은 어차피 복불복(福不福)이 아니겠어?
아침에 걷다 보면 그 시간대에는 걷기 운동하는 사람 중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인들의 모습은 거의 온전하지 못하다. 어딘가에는 흠이 있다는 것을 거동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거의 날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시는 분을 만난다. 항상 같은 여자분이 그 휠체어를 밀고 있다. 아직 젊어 내 생각에는 딸이지 싶다. 그냥 밀고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끊임 없이 주고받는다. 아니, 마스크를 써서 그렇지 모시고 나온 따님의 외로운 독백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분을 지나치면 몇 걸음 내딛고 돌아서서 아득하게 사라질 때까지 바라볼 때가 많다. 몸에 익은 거지만 찌릿한 아픔의 한편에는 알 수 없는 부러움도 있다.
저런 호강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돈이 많아서, 혹은 자식이 많아서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더욱이 딸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복일 수도 있다.
며느리? 그런 며느리는 대한민국에는 없을 것이다. 쩝.
이 글은 셋이나 되는 내 며느리들이 읽지 않기를 바란다.
살다 보면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아주 많다.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