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내렸다. 오늘도 아침에는 내릴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그래, 지금은 장마 중이다. 그 장마 중에 하루의 날이 어떨까 하고 예측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아침 운동하러 나왔다가 항상 쉬는 벤치에 앉아있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덮여 있는 나무의 잎이 풍기는 느낌은 생동감 바로 그것이다. 어제 내린 비가 나뭇잎에 묻어있던 먼지가 말끔하게 씻겨서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아니면 모처럼 많은 비가 내려 나무의 맨 밑의 뿌리 깊숙한 곳까지 닿아서 나무 전체가 즐거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비 온 다음 날 조금은 이른 아침의 우거진 숲 밑에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 감각이 심하게 오작동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의 감성은 사실(fact)과는 정도 이상의 차이가 날 수 있다. 특히 나 같은 어쭙잖은 글쟁이는 엉뚱하게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아주 작은 변화를 보였을 뿐인데 그걸 핑계로 엄청 아름답다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남의 평가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쓰는 이딴 글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더 나아가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생산적으로는 사용할 길이 막힌 시간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농담처럼, 이제 경로당에 가는 게 정해진 길인 것 같은데, 그런 곳에는 먼저 온 형들이 담배 심부름을 시킬 것도 같고, 그 형들이 나는 잘 모르는 고스톱판에 의무적으로 등판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한때는, 노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의 내 이야기를 소상하게 써나간다면 바로 그런 글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요즘은 몸이 하루가 멀다고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게 숨을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 대해 내가 담담하고 용감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무기력한 체념이나 절망은 아니라는 뜻이다.
며칠 전에 안경의 도수를 새롭게 조정했다. 아무래도 내 눈에 맞는 안경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새 안경을 낀다고 해도 결국은 내 수준의 범위 안에서 읽고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마음에 안 들어도 손뼉을 쳐주는 아름다운 이웃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