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자 부담

by 임진채

어제는 비가 많이 왔다. 오다가 가곤 하는 장마 때문에 내 유일한 이 걷기운동을 사흘이나 쉬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망설이다 나왔다.

뻐근한 다리를 끌고 반환점에 이르렀는데, 내가 쉬어야 할 벤치가 있는 곳에 가자면 이 풀밭을 건너야 한다. 질러가다 풀이 덮인 웅덩이를 밟는 날이면 그게 바로 재앙이다. 운동화가 젖을 게 두려우면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길을 바라봤더니 아득하다. 사흘을 쉬었다가 삐걱거리며 끌려온 다리가 영 마음에 걸린다.

세상의 일이란 항상 이렇다. 복불복에 명운을 걸어야 하는 일이 끊임이 없다. 전망이 희미할 때 느끼는 공포는 생각보다 그악스럽다. 그러나 낮은 확률을 깨부술 때의 쾌감 또한 색다르다.

로또를 사는 심정으로 풀밭으로 들어섰다.

괜찮은가 싶더니, 으~힉! 기어이 물구덩이를 밟았다. 오른발이 쑤욱 다 들어가 버렸다.

“이런! 쓰~벌!!”

하늘에 맹세하건대 무심코 나온 욕이다.

5년 후면 80이 되는 영감이 해서는 안 될 욕설이다.

내 주둥이가 남사스러워 주위를 휘둘러보다가 이내 그만뒀다.

따지고 보면, 욕을 하는 놈(發信者)도 나고, 그 욕을 들어야 하는 놈(受信者)도 결국은 나다.

X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하자면, 그건 수신자 부담(受信者 負擔)으로 처리하기에도 애매하겠다.

내가 나한테 욕했는데 어느 놈이 시비할 거야?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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