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살까요?

by 임진채

예전에 학생이던 시절 교무실에 불려 가면 의자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안경 위 눈이 생각난다. 서류를 보고 계시다 불려 온 사고뭉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두꺼운 안경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안경은 낮추고 눈은 치켜뜨는 그 희한한 조망법.

어린 내겐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스승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돋보기 끼고 책을 읽다가 곁에서 말 짓 하는 손녀를 안경 너머로 살피는 꼬락서니라니·····.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안 좋은 것은 잽싸게 배워요. 배울 것을 배워야지·····.

어제 헌책방인 알라딘에서 책을 몇 권 샀다. 성전 스님의 책이 있는가 하고 갔었는데 내가 적어간 건 아예 없고, 명단에 없는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를 사고, 그냥 나오기 아쉬워 맴돌다가 다른 세 권을 더 골라서 계산대 위에 놓았다.

“회원이시죠? 전화번호를 입력하시지요.”

“..............................?”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들고 다니는 내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당황해서 핸드폰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아무나 핸드폰을 열어보면 내 번호가 튀어나오냐? 내가 미쳐, 정말.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했느냐고?

친절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애를 써서 겨우 기억하게 했다. 무려 삼십 분은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책을 툭툭 치며, 이런 내가 책을 읽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한탄하는 나를 그 아가씨는 마치 큰 누나인 듯 자상하게 위로한다. 산더미 같은 책 속에 묻혀 살아서 그런지 마음이 태산처럼 넓고 깊었다.

그런데,

나는 왜 살까요?

그냥 확 죽어버릴까 하는데, 그래도 되는지 알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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