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그러나 너무 추웠던 삼척 맹방해수욕장

- 사진 그리고 여행 -

by 임진채


촬영에 사용한 카메라는 핫셀블래드 903 SWC 다.

렌즈를 교환할 수 없는 39mm 붙박이지만 초광각인데도 왜곡이 거의 없는 좋은 카메라이다.


필름은 코닥 100 TMX 를 썼고 현상은 내가 직접했다. 현상은 반자동인 독일의 CPP2를 사용했다. 온도 조절과 교반은 자동으로 돼는데 약품 교환은 수동으로 해야 한다.


일 못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잘못을 꼭 기계에 떠넘기는 것인데 나는 다행히 그런 증상은 없다.



필름 현상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점인데, 만약에 내가 손재주가 조금만 있었더라면 배병우 작가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을 것이라고 믿는다. ㅎㅎ.


필름 현상 정도는 다른 곳에 맡겨도 된다고?

아! 그 사실을 잊었네!

그러나 핑계는 그것 말고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이 사진도 현상이 엉망이어서 스캔하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캔은 잘 하느냐고?

그건 왜 물어요? 자존심 상하게 시리. 쩝.




2014년 11월 4일 날 나는 혼자 동해안을 여행하고 있었다.

표현을 여행이라고 했지만, 그건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고 사실은 혼자서 사진을 찍으며 동해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시작해서 그 밑으로 가능한 곳까지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내가 삼척에 도착한 것은 4일째 되는 늦은 오후였다.

처음 가는 곳이다. 사전에 준비해 둔 자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한 방법이었다.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맹방해수욕장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촬영은 불가능했고 어디 자고 갈 곳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다 조그만 마을을 발견했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동네 이름을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우선 밥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촬영하러 다니다 보면 정상적으로 밥을 먹을 방법은 거의 없다. 준비해 간 햇반에 물을 끓여 말아 먹는 게 고작이다. 반찬은 마른반찬 몇 가지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건 이틀을 머무는 경우도 없는 일정이다. 그래서 최대한으로 빨리 이동할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아내하고 같이 갈 때면 느긋하게 텐트도 치고 아내가 해준 밥도 먹을 수도 있지만, 나 혼자 나가면 그런 호사는 불가능하다. 차 뒷좌석에 구겨져 자야 하고, 밥은 햇반이 가장 손쉽다.


저녁밥을 그리 서두르는 것은 조금 있다, 어두워지면 사실상 밥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 전조등을 켜고 그 불빛 밑에서 뭐를 하겠다고 하다가는 동네 사람들한테 욕먹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이건 여행이 아니라 흡사 거지 행각인 거다. 그래도 시대가 바뀌어서 간첩이라고 신고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식당에서 밥 먹고 모텔에서 자면 편하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산천 유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느긋하게 돌아다니다 보면 한 달이 걸려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양이 얼마 안 된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여행이라고 본인이 말한다면 그건 정신이 좀 나간 게 분명하다.


자고 아침에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에 느낀 건 엄청 춥다는 것이었다. 11월 4일이면 이건 그냥 가을이다. 그런데 날이 이리 춥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차를 끌고 맹방해수욕장 쪽으로 나왔다. 나가서 몇 컷이고 찍어야 하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백사장의 모래 먼지를 보는 순간 차에서 내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나가기 싫다고 해서 안 나가도 되는 입장이 아니다. 돈 받고 하는 짓은 아니지만 찍어야 한다는 건 엄혹한 현실이다.


바닷가를 어기적거리고 다니면서 찍은 게 겨우 5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의 카메라는 목에 걸 수 있는 줄도 없다. 흡사 얼음덩어리를 쥐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사진에 대한 열정이 어떻고 하는, 뭐 그딴 말은 필요가 없다.

헐렁한 셔츠만 입고 목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백사장을 나오면서 정말 울고 싶었다.


혹독했던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사진을 아꼈다. 사진의 가치가 아니라 고생한 흔적을 높이 산 것이다.

별 희한한 걸 추억거리로 삼는 내 정신이 정상인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또라이가 아니라는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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