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노래
본인 인증이 필요할 때가 많다. 금융 거래할 때는 별도의 형식으로 하지만 그 외에 핸드폰으로 할 일도 많다.
인증 신청을 하고 문자로 인증번호를 받게 되면 그걸 처리하는데 나는 그때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창피한 말이지만 인증번호를 확인하느라 문자를 열면 전에 사용하던 창이 닫혀버린다. 어떻게 해서 안 닫히게 하고 입력하려고 하는데 빌어먹을 놈의 그 인증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대여섯 번은 보통이다. 이 시점에서 혼자서 욕을 안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추앙받아도 될 인격이다.
가깝지만 젊은 지인이 나하고 통화하는 중에 잠깐 들어오는 문자를 확인하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전화를 끊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그 말끝에 핸드폰의 사용법에 대해서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능을 설명해준다.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동시대를 사는 건 아닌 게 맞다. 이건 가방끈으로 얼버무릴 일도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다 해내는 일이 아니던가 밀이다.
그래서 내가 어렵게 찾은 구실이 “나는 딸이 없어서….”다.
아들들에게 뭐를 물으면 건성이고 두 번째부터는 짜증이 섞인 게 느껴진다.
며느리? 곰살맞지 않다. 딸들은 아주 자세하고, 열 번을 물어도 싫은 기색 없이 잘 가르쳐준다는데 내게는 그런 딸이 없다. 여러 번 후회하는데, 인제 와서 딸을 낳을 방법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렸으니 한탄을 해도 소용이 없다.
살아가면서 아는 게 적다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다.
일반 지식도 마찬가지지만 그중 제일 불편한 것은 아무래도 인터넷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다.
내가 컴퓨터를 배운 것은 40이 넘어서다. 큰 맘먹고 학원을 찾았는데 같은 반에 막내아들하고 같은 초등학생이 있었다. 초등 3학년짜리 급우라니.
보름 동안은 강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말이 분명한데 그 뜻을 이해는커녕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몇 번을 그만둘까 했지만, 용케 견뎠다.
어언 이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멀미를 한다.
지인이 통화를 끝내기 전에, “사용법을 배우세요. 그렇지 않으면 비싼 돈 주고 신형 핸드폰을 살 필요가 없잖아요.”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아무에게나 잘 묻는 성격인데도 그걸 물을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글을 읽거나 말을 들어도 휘발하는 시간이 워낙 짧아 오 분을 담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라도 같은 질문을 오분 간격으로 한다면 참아주지 않을 것 아니겠나 말이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어지간하면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오지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고 싶지만, 이 엄동에 시골에서 내 육신이 견딜 것 같지가 않다.
다른 방법은, 살 만큼 살았으니 생을 명에 퇴직하는 것인데,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더 살고 싶어서 변명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