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노래
사람의 성격은 수시로 변하는 모양이다.
나는 한때 시골에 살면서도 진득하게 집에 붙어 있은 적이 없던 사람이다. 내가 낮에 집에 있으면 동네 아줌마들이 “어쩐 일로 아저씨가 집에 있대요” 할 정도였다.
돌아다니는 만큼 아는 사람도 많고, 아는 사람이 많은 만큼 여러 일에 끼어든 경우가 많이 생긴다.
동네 밖에서 생기는 일은 어느 땐가부터 내가 많이 해결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관공서에 가서 무슨 이해관계가 얽힌 일에 기웃거리는 건 아니고, 사랑이 살다 보면 생기는 자질구레한 분란을 해결하는 일들이 많아진 것이다. 술 먹고 싸우고 난 뒤에 화해를 시키고 경찰서에 가서 일이 복잡하지 않게 손을 쓰는 정도의 일들이다.
그런 내가 요즘은 거의 두문불출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레 삶의 형식이 바뀌어 갔다. 그렇다고 사람을 전혀 안 만나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사람 찾아서 싸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나 자신도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예전하고는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 한꺼번에 전혀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은 좀 특이한 것 같다.
그건 결코 나이를 먹어서가 아닌 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 많은 사람도 아파트 경로당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복지센터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렇다 치고, 아무리 같이 산다지만 아내의 변화 또한 사뭇 크다.
전에는 어디 나가는 일 없이 집에서만 맴돌던 사람이 요즘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아줌마들하고 어울려서 안 다니는 곳이 없다. 더욱이 막내아들의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열심히 돌아다닌다.
무릎이 안 좋아서 시술했고 얼마 전에는 손목까지 다쳤지만, 활동 범위가 좁혀지지 않는다.
이건 젊었을 때 하고는 서로가 완전히 상황이 뒤바뀐 거다.
요즘은 손녀인 여정이를 오전에는 내가 돌봐야 한다.
유치원이 방학했고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기는 하는데 통학차가 오고 가는 게 아니고 보호자가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서 여정이 할머니는 아침에 여정이를 내 사무실에 맡겨 놓고 다른 친구들하고 운동을 나간다. 무릎이 아픈 사람일지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이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같이 걷는 사람들이 모두 다 다리가 성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전에 한 번 그들이 걷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 기준으로 생각할 때는 그거는 걷는 게 아니고 아주 빠른 경보 수준이었다. 아내는 물론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걱정이 많다. 운동이란 자기 몸 형편에 맞춰서 하는 건데, 아픈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하고 같이 걷는다는 건 무리가 뒤따를 것 같다.
허리가 아픈 나는 철저하게 혼자 운동한다. 다리 아픈 아내하고 같이 걸은 적이 있는데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걸어서 그 뒤로는 나 혼자 다니기로 했다. 그렇다면 아내도 자기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면 체력에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같이 다닌다.
그 이유가 뭘까? 시샘이라 하기에는 그렇지만 뒤처지고 싶지 않은 그런 욕심이지 싶다.
몇 번을 혼자 운동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수용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나와 남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긋고 안으로 칩거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범접 또한 허용하지 않는 데 반해, 아내는 너무 라고 할 정도로 외향적이 되었다.
그걸 심리적으로 소상하게 분석한 책을 읽은 것 같은데, 그게 어찌 되었든 나나 아내에게 찾아온 변화에 당황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둘째 손녀가,” 할아버지는 커서 뭐가 될 거예요?” 했듯이, 나와 아내는 지금도 열심히 크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내 마음은 영 조심스럽다.
잘 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