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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Aug 07. 2023

속에 천불이 나는 이유는

노인 두 분이 나란히 걷는다. 서로 손을 맞잡고 걷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들이 영감 할멈 사이인 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우리는 척 보면 아는 감(感)이라는 더듬이가 있다. 

저런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건 아름다움이다. 내 마음도 같다. 아주 잘 그린 그림을 보는 그런 기분이다. 그에 더해 참을 수 없는 부러움이 가득하다.     


전에 나도 저런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은 단 한 번으로 끝난다. 

같이 걷는데 무슨 수를 써도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아내는 한참을 앞서가다 돌아서서 나를 기다리곤 하더니 결국 한마디 했다. “속에 천불이 나서 같이 못 가겠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걸은 후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   

   

“속에 천불이 난다.” 그 기분은 나도 잘 안다. 

예를 들면, 나는 뜨거운 음식을 못 먹는다. 밥은 솥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몇 번 뒤집어서 그것을 또 여러 번 치댄 다음에 그릇에 담아주는 밥이 고슬고슬한 게 아주 맛있다. 우리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해주셨다. 내 아내는 나의 그런 부탁을 단번에 거절해버렸다. 자신은 밥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은 뜨거워야 맛있단다. 나는 몇 번인가 입 전체가 삶아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호소는 호소로만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삶이 지속되는 내내 내 속은 어느 하루를 빼지 않고 천불이 나고 있다.     

 

전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곁에 있던 녀석이, 오래 산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했다. 물론 술에 취해서 그랬겠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속에 천불이 났다. 

“어느 자식이 그런 소리를 하던?” 

술을 마시면 쌓인 게 금방 폭발한다. 발화점이 낮아진 탓이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그 자식이 내게 말했다. 

“아니? 이 자식이 왜 나한테 화를 내고 지랄이야!”    

 

우리가 속에 천불이 난다는 건, 공감받을 사안인가 하고는 상관없이 수시로 자동 발화하는 울화(鬱火)의 또 다른 증상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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