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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Aug 30. 2023

옹색한 소갈머리

날이 끄무레한데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신경을 써서 우산을 챙기는 편이다. 비가 올 것 같지 않게 찡그리는데도 우산은 꼭 들고 나간다. 머리를 볶아서 그렇다. 젊을 때 튀어보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파마한 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내가 조명발을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키는 작은 데다 머리까지 백발이니 꼿꼿한 머릿결을 파마로 덮는 게 좋겠다는 미용사의 충고를 받아들였었다. 

    

우산 없이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 옷이 젖는 것은 사건도 아니다. 비에 젖어서 불어 터진 라면 발처럼 늘어진 머리칼을 이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그 자체가 바로 난리(亂離)다.  

    

아침 출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려가다 바로 한 칸 밑에서 선다. 타는 사람을 보니 우리 밑층의 남자다. 우리는 서로 인사도 안 하는 사이다. 아이들의 층간 소음 때문에 몇 번 다투고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살고 있다. 

어느 학교 교사라는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오자 바로 등을 돌리고 선다. 먼저 타고 있던 내 코앞에는 그 남자의 머리에 올린 뚜껑(가발)과 목덜미에 난 기존의 머리가 옹색하게 이어진 부분이 어른거린다. 멀리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바로 코앞이라서 너무 선명하다. 

이 양반도 나하고 비슷한 핸디캡(handicap)이 있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나와 견줄 수가 없다. 비 오는 날이면 젖은 뚜껑의 처리 방법은 나보다 더 참혹할 수밖에 없다. 심한 바람이라도 몰아치는 날이면 날려갈 것 같은 뚜껑을 손으로 누른 채 걷는가? 아님. 벗어서 가방에 넣나?  

   

앞으로는 일본 때문에 생선 먹을 일이 없겠고, 그래서 그 생선 가시가 목젖에 걸려 애먹을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어떤 형식이든지 목젖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맹점(盲點)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恥部)라 느끼는 부분을 은폐(隱蔽) 혹은 엄폐(掩蔽)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런 노력을 바라보는 제삼자는 빙그레 웃어넘기는 아량을 보일 수도 있고, 저건 좀 심한데 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기도 한다. 

     

나도 어느 시기에 키 작은 내 몰골이 처량해서 키높이 구두를 신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유혹을 청승 떨지 않고 넘겼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은근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내 양식에 대견함 같은 것을 느낀다.  

    

이 더운 여름날에 머리 위에 또 다른 머리를 얹고 않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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