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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Aug 28. 2023

고정관념

아침에 출근한 후 화장실을 오가며 다른 사무실을 보니 거의 다 출입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건 사무실에 에어컨을 안 켰다는 방증(傍證)이다. 그걸 본 나는 심하게 더위를 타는 체질이지만 섣불리 에어컨의 스위치를 누를 수 없다. 나는, 설혹 내가 견디기 어렵더라도 다른 사람은 다 절약하는 전기를 내가 허투루 사용하는 건 안 된다고 교육된 세대다. 

선풍기 바람을 내게 집중하도록 조절해서 이 더위를 넘어갈 생각이다.

     

우리는 몽당연필에 붓 대롱을 끼워 사용하던 세대다. 지금은 적당한 소비가 미덕이라지만 우리 세대의 머리에는 절약이 곧 선(善)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굳어 있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내 손주들에게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지금 아이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이젠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거의 진리 같던 사실이 불과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에 달라진 것이고, 그 변화는 자신이 혼란스럽더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태가 그렇기에 따라는 가는데, 은연중 느껴지는 괴리감(乖離感)까지 깔끔하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늙은이의 마음은 그래서 항상 편치 않다.

     

아주 오랜 옛날, 내 또래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며 목숨까지 걸고 민주화를 부르짖을 때 나는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첫 공일과 삼 공일을 바라보며 일터에 나갔었다. 넥타이부대들이 스크럼을 짜고 성난 표정으로 거리를 휩쓸 때 나는 콧구멍만 한 내 가게의 매상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항상 부끄러웠고 깊은 채무 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심 내 삶 자체가 내내 무임승차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불과 몇 년 전에,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때 내 머리는 호호백발이었다. 내가 유일한 꼰대거니 생각했는데, 현장에는 의외로 노틀들이 많은데 놀랐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는 내 몫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내 앞도 못 가리는 놈이 어찌 국가 대사에 의견이 있으랴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도리는 다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기력이 다한 것 같다. 안 아픈 곳을 빼곤 온몸이 다 아프다. 

육신(肉身)이 의사(意思)를 밝히는데 소용(所用)되지 못하면 현재 당면한 일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다. 그러나 입을 닫는다고 기왕에 형성된 내 고정관념은 변치 않을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는 믿음과 그걸 완벽하게 이뤄야 한다는 소신은 여전하다.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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