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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Aug 25. 2023

나와 내 그림자

아침 운동하러 나와 벤치에 쉬고 있다. 그늘을 찾아 앉았으나 온전한 그늘이 있을 수 없다. 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금방 해가 달려가 버려서 내 몸이 그림자가 되어 벤치 밑 땅에 사선(斜線)으로 누워버린다. 

이곳에서의 앉을 자리는 마음에 안 들어도 쉽게 옮길 수 없다. 걷다가 잠시 쉬는 용도로 만들어진 이 숲길의 벤치는 그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이렇다. 자신의 성에 차게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이곳 그러니까 이 블로그는 원래 내가 촬영한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눈이 안 좋아 사진 촬영을 포기했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딱 1년을 파워블로거까지 됐었는데 그 알량한 자리를 네이버에서 달랑 회수해 가버렸다. 

지금은 그냥 반백수로 지낸다. 그건 생각하고 달리 묘한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내게 걸었던 기대를 미련 없이 지워버려서 쓸데없는 욕심을 잠재우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조회 수나 공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문득 동갑인 사촌 형의 안부가 궁금하다. 석 달 차이로 내가 동생이어서 내게는 아픈 혹이기도 하다. 웃기는 것은, 나는 동생인데 학교는 내가 2년 선배다. 

호적으로 따지면 석 달이 아니라 완벽하게 일 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게 하도 억울해서 할머님께 따졌었다. 그땐 대가족이어서 작은어머니가 안채에서 사촌 형을 낳아서, 석 달 후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사랑채에서 나를 낳았단다. 그런데 태어난 애를 보니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아서 호적에 형만 올리고 나는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구한 팔자가 또 있을까? 나는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生)과 더불어 사(死)를 동시에 이마에 붙인 숙명이라니·····.   

  

형에게 전화하는데, 신호가 여러 번 가는데도 안 받는다. 이 형의 성격은 이렇다. 자신이 안 받으면, 급한 일이면 다시 걸겠지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잘 안 가지고 다닌다. 성격이 그러니 세상 사는 게 항상 여유가 있다. 

지난번에 통화할 때 어금니를 세 개나 뽑았다고 자랑했다. 나는 두 개 뽑았다고 했더니 자신이 하나 더 많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밥은 하루에 세 끼를 같이 먹는데 사는 것은 훨씬 더 여유롭다. 

형은 항상, 인생사 새옹지마라(塞翁之馬) 한다. 마음을 훌훌 풀어버린 형이 내심 부럽다. 

     

돌아가려고 벤치에서 일어나니 땅바닥에 늘어져 누워있던 내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장선다. 

너는 정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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