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불여튼튼’이라는 말은 ‘튼튼히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게 사전적 해석이다.
좀 엉뚱한 것 같지만, 나는 이리 한문과 한글이 얽혀 있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건방지게도 이 말을 내가 만든 단어가 아닌가 헛생각할 때도 있다. 위아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놈의 생각이다.
어느 선현(先賢)은 무식한 자의 특징이 겁이 없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너는 참 겁이 없구나.”라고 말하면 나더러 무식하다고 하는구나 하고 해석하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걷기 운동하러 사무실을 나서면서 우산을 들고나왔다. 날이 꼭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구름에 비 쌓였을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막상 나오고 보니 나 말고도 우산을 든 사람이 더 있다. 그런 사람이 더러 있다는 것은 내 판단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에 올 때까지는 물론이고 오후에도 결국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내 예측은 빗나갔지만 내가 취한 행동은 옳았다. 미리 대비하는 것은 옳을 수밖에 없다.
오전에 야당 대표가 검찰 수사받으러 가는 길에 그 소회(所懷)를 말하는 뉴스를 봤다. 들으면서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 잡으려는 자나 잡히지 않으려는 자가 하는 말의 사실 여부를 우리가 어찌 알겠냐만, 어느 한쪽, 아니면 양쪽 다 불여튼튼 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불여튼튼 하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분명하게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어리숙한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의 판단은 있다. 그러나 아직은 불여튼튼 하지 못해서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을 뿐이다.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측한다. 아니 강하게 믿는다.
나나 국민의 상당수는 겁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무식하지는 않다는 것을 위에서 어른의 말씀을 빌려 내가 밝혔다. 역사는 피를 흘릴지라도 결국은 옳은 쪽으로 갔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