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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01. 2023

산다는 것

글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살다 보면, 그러니까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자연스레 알 일이거니 했었다. 그런데 이미 머리가 하얘지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지금도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이제는, 그런 것은 아무나 아는 게 아닌 모양이구나 하고 체념하고 있다. 단지,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그래도 돌아가신다고 말하는 그 지점(指點: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임)은 여전히 모른다.     

 

지난 월요일, 지방에서 올라온 부고(訃告)를 받았다. 후배의 모친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 가까이 사는 다른 후배와 함께 전북 익산을 향해 출발했다. 

후배의 모친은 지난 9년 동안 앓고 계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만 그 후배는 최선을 다해 병구완했다. 9년이라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가만 생각하니 후배의 나이도 이제 70줄에 들어섰다. 이건 엄연한 사실인데도 흔히 느끼지 못하는 착시(錯視)가 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으레 젊을 것이라는 영문 모를 오판(誤判) 말이다. 그 후배에게 남은 시간도 충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람이 산다는 것. 

평소에는 그 의미를 생각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 남의 주검을 보는 순간, 아주 짧게 자신의 주변을 살피게 된다. 당연히 당황한다. 그러고는 엄숙해져서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서.   

  

산다는 그 애매한 숙명에 대해 내가 애를 쓴다면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한 번도, 단 하나도 깨달을 것 같지 않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그 오묘한 진리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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