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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15. 2023

석양이 아름다운 이유

무심코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손을 꼭 잡은 노인 부부가 앞서가고 있다. 걸음이 어둔한 것으로 봐서 그분들의 연세를 대강 짐작할 것 같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안 좋은지 할머니께 몸을 약간 의탁하며 걷는 모양새다. 

모른 척 앞서 질러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할아버지는 남은 한 손으로 어딘가를 자꾸 가리킨다. 그런데 이상하게 할머니는 전혀 아는 척을 안 한다. 그냥 앞을 보고 묵묵히 걷기만 한다. 

앞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보이자 두 분은 그곳에 앉으셨다. 그 앞을 지나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여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분들의 앞을 지나가면서 복을 많이 받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떨어지기 직전의 석양이 아름다운 이유는 따로 있다. 수평선, 아니면 지평선, 그도 아니면 아득하게 펼쳐진 나지막한 산자락 뒤로 예쁜 노을을 보이며 질 수 있는 건, 해를 가려버릴 수도 있는 비구름이 없어서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것은 다 응달에서 품앗이 하는 이웃의 도움이 있다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기대며 걸을 수 있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곁에 있으면 항상 무겁던 영감이 먼저 가버렸더라면 할머니 혼자 이런 충만한 마음으로 산책길을 나설 엄두라도 낼 수 있었겠는가?  

   

사람 대부분은 어느 날이든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한다. 복(福)에 취하면 그 복이 항상 영속되어야 할 것 같이 착각하게 됨을 말하는 거다. 거기에다 처한 일에 자신이 간여 될 때는 하늘이 빠개져도 휘황한 석양이어야 한다고 우긴다. 그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게다.    

 

나는 아내와 같이 걷지 않는다. 아내는 무릎 연골이 닳아서 두 다리를 다 수술했지만 나는 그런 아내의 걸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렇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그런 아내가 내게 속에 천불이 나서 같이 다니지 못하겠다고 해서, 나는 이게 내가 타고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느긋하게 벤치에 혼자 앉아서 노트 펴들고 생각나는 글을 쓰곤 한다. 아직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머리는 온통 백발이지만 그래도 의탁할 데가 필요치 않아서 견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러니까 더 나이를 먹으면 나도 외짝 양말처럼 설워할 것이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먼 하늘에 떠 있는 어느 구름에 비 쌓여있을지 알 수 없다. 오늘의 내가 내일도 오늘처럼 온전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내게 이런 오늘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내일도 오늘 같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소망해야 한다. 매사에 천방지축인 내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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