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시죠?
내가 철들 무렵까지도 이건 우리 사회에 조석 간에 주고받는 일상적인 인사였다. 5.16 후에도 한참이나 이런 인사를 주고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말을 뜯어보면, 내용 불문하고 무슨 일에 관계하지 않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괜찮다는 단어는 ‘관계하지 않았다’라는 준말이라 했다. 이어령 교수의 글에서 알게 된 지식이다.
내막을 알았던 몰랐던 관계한 일이 잘못되면, 아니 잘못 엮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숱하게 안녕하지 못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보신(保身)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눈을 감고 사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에 더해 나 말고, 나하고 가까운 저 사람이 어떤 일에 관계한 것으로 몰리면 자신도 한 그물에 쌓인 물고기가 될 수 있어서 항상 확인할 수밖에 없었겠다.
그래서 상대의 안녕도 궁금하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섞인 확인이 일상의 인사가 되었다는 슬픈 해석이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교수님의 이 책이 내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내가 젊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 아는 사람의 집에서 이 책을 잠시 읽었다. 그리곤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내가 부산에 살던 때라 묻고 물어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아가서 그 책을 샀다. 그 후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보수동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을 시절에는 나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은 관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그 부근을 배회하면서도 감히 관계치 못하고 있다.
그때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머리띠를 동여매고 골방에 주저앉았더라면, 그때 이미 알고 지내던 지금의 마누라님도 안녕이 전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년에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그 대통령이 탄생하는데 일등 공신인 어느 사람에게, 새로 탄생한 높은 분의 최측근이 ”아무 말 않고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고 해서 듣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다. 입을 닫고 있지 않으면, 그러니까 관계하고 나서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혀 등골이 서늘했다. 그때 깜냥도 안 되는 나도 내 입을 슬그머니 만진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런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무슨 일이든 관계해서는 안 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지켜져야 할 신조(信條)가 된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 그 전통이 이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