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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16. 2023

돌아오지 않는 제비

내가 노소(老少)를 가리는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머리가 검은 사람은 무조건 젊은이로 치부한다. 남의 눈에 ‘알흠답게’ 보이고 싶어서 염색했다면 그 본심을 인정해 주자는 뜻이다. 그러나 젊어 보이고 싶어서 염색한 사람이 제 나이를 앞세우고 어른 대우를 받으려는 싸가지없는 짓은 절대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벤치 앉아서 메모하고 있는데 아직은 어린 젊은이가 고개를 디밀고 읽으려 든다. 당연히 염색한 머리고, 그런데도 예순은 오래전에 넘어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린 것이, 싸가지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눈초리가 사나울 수밖에 없다. 머리 까만 젊은이가 백발의 노인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예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에도 나와 있다. 아직 어려서 잘 알는지는 모르겠다.  

   

오전에 운동하다 보면 자주 보는 젊은이(?)다. 주로 기구 운동을 하는 친군데 하는 짓이 특이하다. 발은 기구 위에서 기구를 돌리며 걷는 형식인데, 양손은 기구를 잡지 않고 발의 리듬에 맞춰 절도 있게 각 잡고 춤을 춘다. 한두 해 익힌 솜씨가 아니다.   

   

나는 그 친구를 ‘제비’라고 명명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이 젊은이는 한 기구에서만 춤을 추는 게 아니다. 산책로에 군데군데 세워놓은 운동기구가 대여섯 곳이나 되는데 날마다, 또는 시간마다 장소를 옮기기 때문이다. 순회공연을 하는 증으로 생각하는 제비가 분명하다. 운동하러 나온 인간이 칼날같이 주름 잡힌 양복바지를 입고 있다. 

     

날이 무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나는 그 제비가 강남으로 피신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엄동 한파에도 꾸준하게 나온다. 이건 전천후 제비가 분명하다. 강남에 가면 때깔 좋은 친구들이 더 많을 건데·····.    

 

그러던 제비가, 사쿠라가 만개한 이른 봄부터 안 보였다. 봄맞이 지방 공연(?)하러 갔는가 무심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뉴월 염천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나가면 낙엽 져 떨어진 나뭇잎이 발에 차이는 이 가을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날마다 손꼽아 기다린 건 아니지만 마음이 짠하다. 익은 감은 당연하게 떨어지지만, 엉겁결에 풋감도 떨어지는 게 우리의 삶이다. 머리에 염색했을지라도 얼굴에 주름 깊은 사람이 어느 날부터 안 보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사람의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냐 말이다.


밖에는 가을비가 끈질기게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왠지 더 심란하다. 할 일이 남은 것도 아니고, 가지 말라고 허리춤 잡는 사람도 없지만 온 천지가 젖어 있는 오후에 8층 창 앞에 서서 한갓진 길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마음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설워한들 무슨 수가 있으랴만, 지겹도록 타고 온 버스가 종점 어림에 접어들면 깊은 속 한구석에 찬바람이 느껴지는 그런 하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소주 한 잔 마시며 비 멈추기를 기다리자. 혼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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