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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13. 2023

오메, 겨울인가 벼

가을을 건너뛰고 그냥 겨울이 된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왕왕 있는 일이다. 

사기꾼이 임금에게 양심이 곧은 사람만 보이는 옷이라며 입히는 척만 한 후에 벌거벗은 채 거리를 거닐게 한 이야기를 안다. 양심 없는 사람이길 겁낸 임금이나 국민은 깨 벗고 다니는 임금의 옷이 기가 막힌다고 칭찬한다.     


어젯밤에 아내와 다퉜다.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날이 추우니 보일러를 틀라고 했다. 아내는 전혀 춥지 않다고 했다. 내가 춥다면 추운 거니 옳은 판단이니, 가장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 아내는 관리실에서 난방을 조절하는 것이니 우리 집만 보일러를 켤 수는 없다 했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전에 묻어둔 이야기까지 나와서 사건이 복잡해졌다. 박이 터지더라도 현안만 가지고 싸웠어야 하는 건데, 어 하는 순간에 갑오년에 콩 까먹던 이야기까지 내가 들고나온 것이다. 전략적 실수였다.     

저녁을 차려주는데 화가 나서 안 먹겠다고 했다. 그것도 큰 실수였다. 이 마누라가 자고 일어나더니 아침에도 밥할 생각을 안 한다. 생각해보라. 두 끼나 굶고 사무실에 나오는 가장의 마음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둘째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 자식은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한다. 전에는 내 휘하들의 군기는 기막히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이 자식들이 자꾸 웃는 게 예감이 이상하다. 레임덕은 이렇게 오는 모양이다.  

    

둘째 자식이 사주는 순대국밥을 먹고 오면서, 이 자식이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뒤로 두어 번 흔들며, “아버지도 저쪽에 있는 그 인간처럼 안방마님께는 눈 내리까세요. 엄마는 접어 두시더라도 우리에겐 영원한 호랑이이잖아요.”

“으~~음. 아니, 너까지?”     


자식은 갔고, 혼자 사무실 문을 열면서 화무십일홍인 것을 절감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말하는 그 인간의 최후도 이렇게 참담하려나? 

그렇담, 있을 때 잘하게나, 이 사람아, 

죽어봐야 저승을 안 다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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