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진채 Oct 18. 2023

입성

‘입성’이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옷’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나온다. 좀 의외다. 내가 느끼기에는 속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사전에 그리 나왔으면 그런 거다. 나는 이의를 달 처지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옷이나 신발 등 나를 치장하는 데는 소홀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지만, 이 나이에 자신의 입성에 신경 쓰는 짓은 부질없다는 생각이었다. 명토를 박아서 실행한 건 아니지만 은연중 죽음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키가 작아서 내가 입던 옷을 물려받을 사람도 없다.     

그런 내 태도를 아내는 아주 섭섭해했다. 죽을 날을 잡아놓은 사람도 아닌데 꼭 그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 말끝에, 입성이 좋은 거지는 동냥이 잘 된다고 했다. 

     

요즘은 바람 끝이 차가워지는 데도 전하고는 달리 응달진 길을 찾아서 걷는다. 얼굴이 검게 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뜻이다. 덩치가 큰 사람은 얼굴이 좀 검더라도 그건 바로 건강을 입증하는 징표가 된다. 그러나 나같이 왜소하고 마른 사람의 얼굴이 검다는 건 두말할 것 없이 빈티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쩌겠냐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가을이 깊어져 가는 지금 꼭 그런 말을 꺼낼 필요가 있겠냐 싶다. 머리 허연 영감이 청승 떠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현실을 아는 것도 지혜의 일부인 건 분명하다. 우리에게 생사란, 웃으며 주고받는 농담이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이전글 돌아오지 않는 제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