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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20. 2023

삶의 질에 대해서

정확한 학술적 병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중풍이라고 한다. 한쪽을 아예 못 쓰거나 움직임이 느슨하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그렇다. 중년이거나 그 고비를 막 넘은 때에 많이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고 있다.      

아침 운동할 때 종종 뵙는 분이 있다.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분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걷는다. 그분을 지나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표정이 생각보다 맑다는 점이다. 평온한 표정으로 천천히 발을 떼어놓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걷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산책로 곁에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런 걸음으로 상당한 거리를 걸어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국군이 월남에 파병될 때 내 친구 중 몇이 그 전쟁에 차출된 일이 있다. 성해서 돌아온 친구도 있었지만, 심한 상처를 입은 친구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친구는 내가 곁에 있는 동안 내내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전투에서 다친 것하고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것이 서로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당사자에겐 손가락을 깨물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다. 내 친구는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가 생을 정리하고 알았다.      

오늘 아침에도 지팡이에 의지해서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 분을 만났다. 서로 지나치고 나서 문득, 다음에 만나면 그분을 밋밋하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가벼운 묵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평온한 얼굴도 처음에는 절대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불운을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좌절하고 원망하고 속이 터지는 것 같은 분노도 겪었을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자신의 아픔을 수용한 후에야 저런 평온한 얼굴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거부할 수 없는 그 아픔을 가장 좋은 결과로 이끈 그분의 의지에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더불어 저런 불운 없이 이날까지 살아 온 내 행운에 하얀 머리 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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