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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30. 2023

세상에 믿을 놈이

나는 유시만 작가의 열렬한 애독자다. 그가 쓴 책의 거의 모두를 사서 읽은 사람이다. 그가 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는 책 두 권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선 ‘자유론’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유 작가의 글 일부를 인용한다.

<‘자유론’은 어려운 단어가 별로 없고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찬탄하게 만드는 글도 훌륭하지만,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글도 그 못지않게 훌륭하다.>   

  

이 글을 읽고 당장에 서점으로 뛰어갔다. 보기에도 만만하게 보이는 책이다. 책이 작고 얇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맘먹고 읽으면 반나절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겨우 몇 장을 읽었을 뿐인데 어지러웠다. 

나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지만, 깜냥에는 한 독서한다고 믿었는데 까만 것은 글씨고 하얀 것은 종이라는 구분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자유론’은 어려운 단어가 별로 없고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다니. 그렇다면 나는 바보라는 말인가? 이런 때에 우리는 그냥 “쪽이 팔린다”고 말한다. 

    

그다음이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고 그날은 그냥 돌아왔다. 책이 너무 두꺼웠다. 내 실력을 말하자면, 나는 그리 두꺼운 책을 읽어볼 엄두도 못 낼 선수다. 

내가 기특한 건 항상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몇 번인가를 서점에 갈 때마다 그 책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나 자신을 알아채고 그냥 왔다.

사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뭔가에 홀리는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결국 그 책을 사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아주 안쓰러운 내 모습을 또 보고야 말았다. 

유시민 작가와 나를 같은 반열에 놓은 적은 없다. 그래도 그렇게 쉽다는 책에 나는 단번에 박살이 난다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목욕탕엘 갔다. 먼저 탕에 들어간 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물속에 머리를 담갔다가 나와서 하는 말이 “어~어. 이거, 정말 시원하다.”

그 소리를 들은 아들이 무심코 탕에 첨벙 들어갔다가 놀라서 튀어나오며 하는 소리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한 놈도 없다니까!!!”  

   

내가 유시만 작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따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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