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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Nov 01. 2023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을 아침

아침이면 버릇처럼 나가서 걷기 운동하는 곳, 행신역에서 강매역까지 이어진 산책로에 나와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아침에 무심코 앉은 자리 곁에 단풍이 예쁘게 물든 나무가 서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단풍나무는 아니다. 그런데도 빨갛게 물든 나뭇잎은 정말 예쁘다. 땅에 떨어져 구르기 전에는·····.   

  

이른 아침이어서 비스듬한 각에서 낮게 비추는 빛이 무척 부드럽다. 한창 사진 촬영하러 돌아다닐 때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빛에 피사체(被寫體)를 맞추기 위해 고심하던 기억이 새롭다. 아기의 볼처럼 보드라운 사광(射光)에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는 벌겋게 물든 나뭇잎의 선(線)이 아주 아름답다. 주춤거리고 다가설 필요도 없이 앉아 있는 벤치에서도 너무 잘 보인다. 카메라를 기자고 올걸·····.      


앞으로 며칠만 지나면 이들은 사라지고 없어, 이 따사로운 볕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단풍은 물들었다 떨궈버리는 시간이 놀랄 정도로 짧다. 그렇다. 가을도 그렇게 너무 짧다.    

 

많은 사람이 가을이라면 누렇게 고개 숙인 벼를 연상하고 거둬들일 풍요를 떠올리겠지만 내게는 다르다. 이맘때 이른 아침에, 어머니는 작은 보따리 하나 옆구리에 끼고 할머니 말씀 잘 들으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 창을 열고 손을 흔들며 떠나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어제 일 같이 떠오른다. 오늘 같은 가을이었다. 그때가 슬픔의 시발이었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이 산책로에는 의외로 오엽송(五葉松)이 많다.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소나무는 늘푸른나무지만, 가을이 되면 잎갈이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바늘 같은 소나무 잎 밑에 갈색으로 변한 잎들이 생기는데 그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밑에 쌓인다. 

어느 식물도 가을이면 육신의 일부를 털어내야 한다는 그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육신을 도려내는 아픔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속에 열려있는 벌건 상처를 전혀 살피지 않는 무관심이다. 

    

요즘은 무슨 일인지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아직은 날이 춥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슨 일인지 짚이는 게 없다. 자꾸 단출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숨이 차 보이고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안쓰럽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는 팽개칠 수 없는 생(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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