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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Nov 03. 2023

가을 소경(小景)

나는 고양시 행신역 앞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거의 30여 년을 살고 있다. 일산 신도시가 생기면서 고양시에서 산 지 1년만 넘은 사람에게는 청약저축히고는 상관없이 2순위를 줬었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에 이 아파트에 당첨되었고 그 뒤로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와 앞 아파트 사이에는 아주 넓은 산책로가 있다. 시공회사에서는 그 산책로에 제법 굵은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다. 그 나무들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거의 아름드리나무가 되었고 여름이면 주민들의 쉼터로 손색이 없다. 특히 가을이면 장관이 벌어진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구청에서는 당장 치우지 않는다. 청소하시는 분은 휴지나 기타 쓰레기만 치울 뿐이다. 생각 한번 해보라. 아름드리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잡것 하나 섞이지 않은 상태로 소복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주민 누구도 탄성을 아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낙엽들은 가을 내내 그대로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다가 가을이 가고 한겨울 눈 오기 직전에 많은 인부를 동원해서 자루에 담아서 치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네인가.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몇 년 전에 구청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 삼 분의 이 정도를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꽃나무를 심었다. 그러고 난 뒤 나는 바로 집 앞이지만 그 길을 간 적이 없다. 

내가 조금만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 해당 덕양구청장의 직을 잘랐을 것이고, 그 후손은 고양시에서 살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행신역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가 있다. 그 길 양옆의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지금 그 길은 온통 노란 은행나무잎으로 덮여 있다. 다른 큰길은 청소차가 와서 낙엽들을 쓸어가지만, 한갓진 곳의 길은 손이 미치지 못해서 그냥 차가 다니는 길의 갓 쪽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인도에도 밟고 지나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처럼 쌓인 게 무척 아름답다.

나는 요즘 그 길을 걸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 빌어먹을 구청에서 또다시 그 예쁜 낙엽들을 없애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인 게다. 

    

오늘 아침에도 그 폭신한 낙엽을 밟으며 출근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가슴에 낭만은 한 줌도 없는 구청 것들이 그 기막히게 사랑스러운 노란 은행잎을 쓸어버릴 것 같아서 조바심이다. 정말 걱정이다.     


나무칼 옆구리에 차고, 나무창은 두 손으로 쥐고 청소차 앞에서 시위할까? 돈키호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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