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노래 -
노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젊었을 때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본인이 더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노인들이 가장 잘 쓰는 소리가,”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 자신이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예전하고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 큰 사고는 안 일으킨다.
문제는 자기의 능력이 젊었을 때와는 다르다는 걸 인정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치는 사고 중 가장 난감한 것이 놀면 뭐 하냐는 핑계로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만다.
여유라도 있는 사람이면 비싼 공부 했다고 치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저기 형제를 포함해서 가까운 지인들을 다 동원해서 자금을 끌어들였다면 그 문제는 본인의 불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친구 중에서 그런 ‘웬수’가 한 명 있다. 엊그제 전화가 왔는데 지금 충주에 있다고 했다. 본가는 인천인데 뜬금없이 충주라 하니 내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나 있을 거냐고 물었더니 일의 추진 상황을 보고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고질병이 다시 도졌구나 싶어서 그 이상은 묻지는 않았다.
이 친구는 몸이 늙으면 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는 친구다. 경험과 지식이 쌓이는 것, 그것만 있으면 언제나, 무슨 일이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친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내가 사업에는 이골이 벤 놈인데, 그 경험과 지식이라면 어렵더라도 어떻게 해나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어렵더라도 어떻게’라는 말은 사태가 녹록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나.
이런 사고방식은 꼭 늙은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젊은 사람 중에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도 자신은 뭐든 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이야 몇 번의 실수 정도는 범하고, 깨달아서 제기할 수 있지만, 종점 앞에 다가선 노인이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진짜 곤란하다.
죽마고우라면서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얼마 전에 강경화 전 외무부 장관의 남편이 사회가 불안정한데도 요트를 사러 미국으로 출국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다. 그때 강경화 장관이 한 말이 “그 사람은 아내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해서 그 험한 야당의 공세를 뚫고 나갔다. 자신의 흠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노인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패하기 전에 무리한 일은 벌이지 않는 게 가장 곱게 늙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내 남 할 것 없이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