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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사진 05

- 사유 (思惟) -

by 임진채


이 '사진'의 바탕엔 '사진'이 없다.

다 내가 그렸다. 손으로 그린 건 아니지만.

보기에는 엉성해도 여간 공력을 들인 게 아니다.


내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모든 '색'이 '야한 원색'으로 치닫는다는 것이었다.


어르고 달래서 만든 색이지만, 아직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색은 좀 더 진중하고 무게가 있는 색이었으면 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내가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일반적인 사진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느꼈다는 게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가리왕산의 이끼 폭포라던지, 동해안에서 치솟아 오르는 오메가 일출 같은 소재는 설명이 필요 없고, 생각이 필요 없고, 보는 순간 ‘아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으로 쉽게 마무리된다.


일출을 촬영하는 광경을 구경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포인트에 가면 거짓말 좀 보태면 10cm 거리로 삼각대가 늘어서 있다. 10cm 거리에서 다르면 얼마나 다른 사진이 나오겠나. 변별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잘 찍고 못 찍은 사진에 작용하는 것은 기능뿐이다.


그 기능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장비가 얼마나 좋나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오늘 가서 빛이 좋지 않으면 순순히 물러나고 다음 날 새벽에 또 꿋꿋이 쫓아갈 수 있는 의지와 체력 싸움이다.

누구 말마따나 나올 때까지 팬다는 말이 거기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주위에 알음알음으로 비구상 성격의 작업을 하시는 분을 찾기 시작했다.

한 분을 만났는데 배울 수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가능은 한 데 혼자서 배우면 금전적인 부담이 클 테니 나더러 수강생 다섯 명을 모아오라고 했다.

나는 아주 수월하게 생각했다. 나 말고도 그런 작업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일 거라고 믿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장담하고 나와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진가에게 연락을 했다.


놀랐다. 단 한 사람도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놀라고 실망도 컸다.


많이 고민하다가 혼자 시작했다.

도구는 포토샵이었는데, 사실은 나는 그 당시 포토샵도 잘못했다. 할 수 있는 건 겨우 명암을 조절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실력으로 혼자서 하는 게 얼마나 엉성했겠나.

내 가장 큰 스승은 유튜브였다. 유튜브에도 그런 강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포토샵을 사용하는 기능을 배우는 정도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누구한테 배우지 않고 나 혼자 익힌 짓이기에 아류(亞流)가 없다. 유일(唯一)하다는 것은 희귀하다는 면은 있을지 몰라도 우군이 없다는 외로움이 있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더라면, 서로 응원도 하고 편도 들어 주는 도반(道伴)의 우애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는데 어느 분이 국내에서는 먹히지 않을 것 같으니 페이스북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페이스북에서 한 5년 정도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잠시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는 내가 놀고 싶지 않았다. 그 자세한 얘기는 기회가 되면 할 때가 있을 거라고 본다.


이젠 많이 지쳤다.

박수 받지 못 한다는 건 얼마나 외롭다는 걸 충분히 알았다.

그런데 다시 브런치에 기웃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그 또한 금방 지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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