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쓰는 게 법'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책상 위에 무릎 꿇고, 두 눈을 감고, 양손을 치켜들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반 전체가 그랬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친구 하나가 가방에 둔 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양심의 가책 받을 짓을 한 번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내리라고 했다.
결론만 말하면 나를 포함한 상당수는 몹시 나쁜 놈으로 몰렸다. 선생님의 말씀이 어떻게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양심의 가책 받을 짓을 안 하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손을 내린 몇 명의 친구들은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추궁이 아니라 언급도 없었다. 인정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암담했다. 내가 설정한 ‘기준’이 애초에 빗나갔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친구 중 한 명이 남의 가방을 열고 돈을 훔쳐 간 사건에 우리 모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할 행위의 기준은 당연히 ‘남의 가방을 열고 돈을 훔쳐 가는 짓’이라고 판단했다.
여자아이들이 훌쩍거리고 울기 시작할 무렵에야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가이드라인을 이야기해줬다. “너희들은 보리밭 곁을 지나가다 풀피리를 만들기 위해 보리 모가지 하나 뽑은 적도 없었다는 말이냐?”
우리에게 가장 불리했던 조건은 눈을 감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떤 기준을 설정한 건지 서로가 눈짓마저도 나눌 수조차 없었다.
최악으로, 선생님은 대세를 따라갈 기회조차 없는 상황으로 어린 제자들을 몰고 간 것이다.
그 일을 할머니께 이야기했더니, “아이고 이놈아,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 거야, 이놈아!”라고 하셨다.
조선 왕조 시대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의 어머님이 아들인 황희에게” 어젯밤 꿈자리가 어지러우니, 오늘 조정에 들어가거든, 남이 많이 가는 곳으로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고 한 당부와 그 결이 어떻게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다른 사람의 의중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 그 지난한 짓은 결국은 '복불복'이라는 교훈이겠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있었던 그 억울함과 황당함을, 공짜로 전철을 타고 다니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산다. 트라우마가 된 셈이다. 죽을 때까지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가 거의 30년을 살고 있는 동네인 경기도 고양시, 그러니까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몇 년 전에 선고된 판결도 잊을 수 없다.
판사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피고가 나가면서 불평을 하자 판사는 다시 피고를 불러 세워, 징역 1년 형을 취소하고 거기다 2년을 추가해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그렇다. 일반인들의 상식하고는 달리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리는 그때 판사가 엿장수냐고 웃었다. 엿장수가 다 닳은 헌 고무신을, 엄마 몰래 들고 온 양은 냄비보다 엿을 더 많이 줄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엿장수의 맘이라는 그 엿장수!
내가 그 재판을 봤느냐고?
아니다. 그러나 언론에 다 나온 사실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왜?
허위사실 유포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그럴 수도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주둥이를 조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