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브런치에 작가가 되었다.
그건 좋은 일은 분명하나 기고만장할 이유는 없다. 이곳은 아무나 개설하는 게 아니고 신청을 하면 소정의 심사를 하고 거기에 합격하는 사람에게 글을 쓸 자격을 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심사의 기준이 그리 까다로울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얼마나 지원하는 사람이 많은지는 모르지만, 세를 확장하고 싶어 하는 건 개인이나 단체의 공통된 생리일 수밖에 없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리그전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끊임없이 유입해야 할 필요는 충분하다.
노인인 내 고민은 이곳에 와서도 이어간다. 이곳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간다. 설명하는 글이 왜 없겠나. 그걸 읽어도 파악이 안 되는 게 문제다. 내가 난독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자주 하는, 그래서 이젠 거의 버릇이 된 습성이다.
그 난독증이 잦은 근본적 이유는 내 앎의 수준이 낮은 게 제일 큰 이유일 것이고, 그 다음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사람이 내 주위에 없다는 점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인 집안에는 없다. 같이 사는 막내아들은 IT 업에 종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력이 좋은 거로 아는데 내가 큰맘 먹고 물어보면 듣고 한참을 미적거리다간, “아이참, 아버지는……” 한다.
아들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안다. 아 답답한 양반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쳐 줄 방법을 모르겠다는 표정 말이다. 아들의 심중은 표정만 봐도 아는 건, 지식하고는 다르다.
며느리는 좀 다르다. “아버님! 어디가 안 되세요? 잠깐만 요…” 하곤 제가 들여다본 다음 두두둑 두드리곤, “아버님 됐어요” 한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모른다.
내가 안 묻는 게 집안의 안온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는 일이다.
그럼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냐고?
그 답답한 심정을 설명하자면 책 열 권을 써도 다 하지 못한다. 그래도 요약하자면,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예를 들자면 네이버 블로그 같은 것은 거의 13년을 헤매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그 지경인데도 포기하지 않는 내 근성은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다.
왜 이런 글을 쓰느냐고?
합격했다는 메일 중에 몇 가지 당부의 글이 있었다. 몇 가지 작성하라는 게 있는데, 그 응답을 공개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다.
“정확하게 수신은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성하는 방법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전히 내부 사정으로 약간 지체될 수도 있으니 양지하시고 혹여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주는 일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방법을 깨우치는 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지금 내 심정은 이렇다.
“일용할 양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모르는 사람이 나서서 여러 사람 곤(困)하게 하는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