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만난 노인이 친구에게, “ 으~잉! 이 친구 아직도 안 죽었네! 자네나 나나, 꼰대 짓 그만하고 오늘 저녁이라도 죽어야 할 건데…” 라고 했다면 죽으라고 축원(祝願)한 것은 아닐 것이고, 허물없는 친구끼리 주고받는 자조(自嘲) 섞인 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새파란 젊은이가, “에~효! 꼰대들하곤 무슨 말을 못 해요!” 했다면 비난의 뜻이 없었다 할지라도 비하(卑下)로 읽힐 염려가 있다. 그만큼 꼰대라는 단어가 풍기는 내음은 썩 ‘알흠다운’ 게 아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뾰로통해서 나한테 일러바친다. 내가 묘사력이 부족해서 실감 나게 쓰지는 못하겠고 대충만 말하겠다.
내일모레가 설인데 이번 설에는 애들은 집에 안 오는 게 좋겠다고 내가 말했었다.
내 수하 식솔도 다 모이면 열네 명이다. 방역 수칙이 어떻고 할 것까지 없이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한곳으로 모인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다 모이지 않는 대신 설 전날 며느리들이 와서 전과 같이 음식만 준비하고 그걸 나눠가고 설은 자기들끼리 지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막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번 설에는 음식도 장만하지 말라고 했단다.
세상의 말이란 아야 말 다르고 어야 말이 틀린다. 그런데 이 녀석이 계급을 무시하고 위에서 내리누르는 말투로 음식을 장만하지 말라고 지시(?)했단다.
이 녀석의 말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건 설 문제뿐만 아니라 나나 제 어미가 알 수 없는 일로 속이 뒤틀려 있다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막내의 입에서 ‘꼰대’라는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꼰대라고? 그래? 그럼 저는 뭔데?”
그렇게 말해 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꼰대’라는 단어에 상응하는 대치 말이 없는 것 같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그 꼰대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 정갈한 말은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될까?
나는 안다. 그 녀석이 왜 어깃장을 놓는지.
그 녀석이 나더러 꼰대라고 했다면, 나는 그 녀석을 캥거루라고 말하고 싶다. 집안일이라서 소상하게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말한 캥거루는 뒤에 ‘족’자가 하나 더 붙어야 한다. ‘캥거루족’이란 다 장성했으면서도 캥거루가 어미 배 속에서 기생하듯이 자식들 일부가 그런 형태로 생활하는 것을 빗댄 말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 안다. 내가 이리 말하면 막내에게도 정당하게 반론을 제기할 근거가 있다는 걸.
그렇게 부자지간에 설왕설래하다 보면, 그건 마치 개 스물두 마리가 모여 축구 시합을 하는 격이 된다는 것을. 그게 무슨 소리냐고? 개가 떼거리로 모여서 뛰어다니면 그건 ‘개판’이라는 이야기지, 뭐..
없는 집의 명절이란 그리 풍요롭지 못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숨 쉰다는 게 부질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