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노래 -
시골에 살았고 친구들하고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런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네 아버지 이름이 뭐야”
이렇게 묻는 분은 대개 한 성격 하지 싶은 중년 남성이다. 화를 억제하려는 노력이 표정이나 어조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성질대로 하자면 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지만 남의 귀한 자식에게 손찌검하기는 조심스럽다는 그런 표정이 역력하다.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봄날이다. 친구들하고 냇가에서 놀고 오다 막 보리 머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보리밭 곁을 지나고 있다. 앞에 걷던 친구가 보리 모가지 하나를 뽑는다. 무엇을 하려는지 아이들은 다 안다. 보리피리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뽑혀 나온 모가지 맨 밑에 여리디 여린 대롱 같은 부분을 적당하게 잘라 그 끝을 이로 잘근잘근 씹어서 불면 삐 하는 소리가 난다. 그게 보리피리다. 소리는 나지만 그걸 음악으로 만들 능력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으레 봄이면 보리 모가지를 뽑아 이렇게 보리피리를 만드는 게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만 철없는 놀이였었다.
그러다 밭주인에게 들키는 날이면 재빨리 상황을 살핀 다음 둘 중 하나를 택한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고함을 지르며 쫓아오면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도망치지만 이런 아저씨에게 들키면 꼼짝없이 혼나는 거다.
취조의 시작은 대개 “네 아버지 이름이 뭐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처분도 보통은 비슷하게 이뤄진다. 보리 한 톨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내가 네 아비들에게 이를 것이다.” 로 끝낸다.
자신이 단죄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사실을 통보만 하겠다는 이 넓은 아량이라니.......
내 차례가 되면 친구 중의 하나가 대답한다. “그 애는 아버지가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대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아직은 어린아이의 아픈 데를 건드렸다 싶은 모습이다. 대개는 그걸로 사건은 종료되는 수가 많았다.
자기 가게 우체통에다 전단 한 장 넣었다고 70 먹은 할머니를 무릎 꿇리고 사죄하게 했다 한다.
일 년 농사를 망쳐놓은 아이들에게 차마 꿀밤 하나 때리지 못하던 우리 전통의 심성이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탄 정도로 끝낼 수도 있다.
더 기막힌 일은 같은 죄를 범했는데도 누군가는 감옥에 가야 하고 특별한 누구의 누구는 기소조차 안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검사가 그러면 판사라도 나아야 하거늘 그들의 사찰을 받아서 그러는지 다르지 않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누가 그래?
여기까지 쓰고 보니 말문이 막힌다. 애초에 내 의도는 순박했던 우리 어른들의 심성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려는 것이었는데 글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 지금 이 시대의 사법 현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행히 요즘은 이런 글 썼다고 서에 출두하라는 소린 안 하는 세상이지만, 읽는 사람 쪽에서는 심한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떠들어도 개선될 일이 아니면 입에 담을 필요가 없다. 침묵으로 바라만 보는 것. 그게 오늘을 잘 사는 요령이라면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