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노래 -
떨어져 쌓이는 낙엽의 수가 점점 늘어간다. 조금 있으면 마치 날아와 쌓인 눈처럼 걷는 길까지 덮어버릴 것이다.
나는 이 가을이 두렵다. 피멍처럼 벌겋게 물든 것도 그렇지만 힘없이 떨어져 종잡을 수 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온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그 처지가 싫다. 적어도 내 거취는 내가 정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오후 다섯 시면 어김없이 사무실을 나선다. 행신역 앞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숲길로 접어든다. 이십몇 년 전에 이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지면서 철길을 따라 강매역까지 조성된 숲이다. 세월이 흘러 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에 들어서면 원시림에 들어온 것 같다. 좁은 길을 걸으면 깊은 산속을 호젓이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시에서 관리를 잘해 아름드리나무도 적지 않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이 동네에 사는 것에 감사한다.
내가 운동이라고 부르면서도 사실은 느린 걸음으로 걷는 그 길을 사흘 동안이나 안 나갔다. 비가 내린 날도 있었고 허리가 심하게 아파서 걷기 불편할 것 같은 날도 있었고 괜히 가고 싶지 않은 날까지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꼭 걸어야지 하고 다짐한다.
겨우 가을이 깊어진 것 뿐인데, 그런데도 나는 벌써 겨울을 준비하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옷은 긴 팔로 바꿔 입었고 사무실 간이침대에는 오리털 침낭이 누워있다. 어찌 생각하면 가을은 앉을 짬도 없이 잠시 한숨 돌리곤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나그네와 같은 계절이다. 그래서 내가 진저리를 치지 않아도 가을은 이내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안경에 서리는 김에 짜증을 내는 그런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안경은 정말 깨부수고 싶은 애물단지가 맞다.
이 가을이 흔적도 없이 지나가면 내게는 밖에 나가기가 차라리 두려운 날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가을이 우울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김이 서려 앞을 막아버리는 이 흐릿한 안경 넘어 풍경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