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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旣視感)

by 임진채


고향 후배가 저녁 먹기로 한 식당에 같은 부서 직원을 한 명 데리고 나왔다.

내가 자리에 앉자 후배는 직원에게 말했다.

“야! 내가 모시고 있는 형님이다. 인사드려라,”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에, 알통이 불거진 팔뚝을 과시하는 듯한 꽉 찬 반소매 티를 입은 청년이 일어선다. 양팔을 뒤로 여덟 팔 자로 빌리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힌다,

“행님! 처음 뵙겠습니다. 김 oo입니다.”

이른바 깍두기 인사다.



그 깍두기는 후배의 자리에서 약간 뒤처진 곳에 앉아 있었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90도로 꺾은 허리를 한참이나 유지하는 것을 보곤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이다. 영화에서는 몇 번 봤지만, 이 느닷없이 나타난 똘마니를 나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 혼란스러운 건 내 후배는 경찰, 그것도 경감이었는데 어느새 나한테 알리 지도 않고 조폭으로 직업을 바꿨단 말인가.

물론 후배의 장난이었다. 그러나 젊은 형사의 외모는 영락없이 영화에 나오는 조폭이 분명했다.



전북 전주에 살 때의 일이다. 아마 팔복동 골목이었을 것이다. 무심코 걷고 있는데 젊은이 두 명이 마주오더니 나를 바라보곤 골목 양쪽으로 갈라서더니 이른바 조폭 인사를 한다. 양손 뒤로 뻗고 고개 숙인 채 허리를 펴지 않는다. 순간이었지만 나를 향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뒤돌아 봤더니 몸이 큰 젊은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 양옆에 허리 굽힌 ‘아그들’은 아직도 허리를 펴지 않는다. 인사받는 사람은 아는 척도 않는데 ‘아그들’은 그가 지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있다가 하리를 펴고 가던 길을 간다.

‘행님’의 천천히 건들거리고 걷던 그 걸음걸이가 거의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지위지지 않고 남아 있다.



요즘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어느 유명 인사의 걸음걸이를 볼 때마다 나는 전주 팔복동의 그 ‘행님’이 떠오른다. 어떻게 어깨를 흔들며 걷는 것까지 그렇게 똑 같을 수가 있는지!

아마 그때 그 행님이란 작자도 아마 저 나이가 되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태촌이나 양은이는 그리 걷지 않았다는 데 그때 그 ‘행님’은 두목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행동대장이었지 싶다. 아마.



이런 내 생각은 유식하게 말하면 데자뷔(Deja vu. 旣視感)고, 쉽게 물어서 말하자면 “저 인간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일 것이다.



경찰 간부인 내 후배도 흉내를 냈는데 누군가가 그런 흉내 좀 냈다고 흉을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말이다.


그런데, 조폭이 그리 좋아 보이던? ㅉ ㅉ.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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