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중국 여행을 다녀온 후배에게 보이차 한 통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한때 보이차를 마시는 바람이 불던 바로 그때다.
막연하게 보이차는 정통 중국차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실제 차 맛은 내 구미에 썩 당기지 않아서 잘 마셔 지지 않았다.
중국이라고 하면 바로 연상되는 '짝퉁' 혹은 '농약 뿌린 농산물', 뭐 그런 단어들 때문에 가던 손길을 잡아당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심란하게 마음을 흔든 소리는 “보이에 가도 진짜 보이차가 없다고 하던데 어쨌든 보이에서 사 온 것은 맞으니 한번 드셔 보세요.”라던 후배의 말이다.
그 뒤 후배에게 물었었다.
“자네. 그때 중국 보이에서 사 온 보이차, 그거 다 마셨는가?”
“그럼요. 금방 다 마셨어요.”
“으~잉? 그것을 다? 어떻게?”
“큰 주전자에 한 옴큼씩 넣고 팔팔 끓였다가 갈증이 날 때마다 한 사발씩 마셨죠, 뭐."
“......"
아! 이 사람이 그 드넓은 중국을 한 바퀴 돌고 오더니 사람이 아주 대범해졌구나!
중국의 보이차와 우리의 보리차를 친형제, 아니면 사촌(四寸) 정도의 항렬(行列)로 엮어버리는 저 통 큰마음이라니!
나? 나는 한쪽 귀퉁이만 떼어내 맛을 본 뒤 지금까지 그대로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런 내가 이번에 또 보이차를 주문하고 말았다. 후배가 선물한 것은 숙차(熟茶: 발효차)였으니 이번에는 생차(生茶)를 한번 마셔보자는 구실이었다. 그딴소리는 어디에서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내심 깊은 곳에는 뭔가 좀 멋져 보이고 싶은 대책 없는 허영(虛榮)이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그 보이차가 어제 배달되었다. 부랴부랴 뜯어서 역시 며칠 전에 인사동에서 사 온 짝퉁 자사 호에 넣고 우렸다.
맛? 그~게. 그렇지 뭐. 차의 마시라는 게……
아내는 곁에서 자꾸 더 우리라는데, 결국은 나무 잎사귀인데, 무슨 소 사골(四骨)도 아니고 푹 곤다고 진국이 나오겠어?
더 걱정인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농약 맛을 아직 모른다. 차에 농약이 섞여 있더라도 나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역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지 뭐.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