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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사냥꾼

by 임진채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항상 조심스럽게 걸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게 정상적인 걸음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을 잠자리 사냥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을로 접어들 무렵에 꽃이나 심지어는 풀잎에까지 날아와 앉은 후 한참을 꿈쩍이지 않는 잠자리.

우리는 그런 잠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실제로 잡은 경험이 많다.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은 극히 인간적인 방법이다. 아무런 도구 없이 조심조심 접근해서 손이 닿을 거리까지 들키지 않고 가면 꼬리나 날개를 그냥 조심해서 잡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우리는 선생님의 걸음걸이에서 우리가 잠자리에 접근하던 모습을 연상한 것이다.


자신의 별명이 잠자리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자기 걸음걸이에 연유에 대해서 각 반에 수업을 들어가서 설명하셨다고 한다.

대학에 다닐 때 유도 선수였는데 연습하다 허리를 다쳤단다. 그 뒤끝이 좋지 않아서 선수 생활도 끝났지만, 허리도 원래대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신의 걸음걸이가 그렇다고 담담하게 설명하신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의 처지를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의 별명까지 지우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어느 순간 안 보인다고 생각할 즈음 몇 가지 소문을 들었다. 선생님이 우리 3학년 아이 중 여럿에게 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허리 통증을 잊게 해 줄 진통제 값은 선생님의 봉급으로는 다 해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일로 우리는 잠시 술렁거렸을 뿐 선생님이 안 보이자 우리는 이내 그 선생님 생각은 잊었다.



나는 몇 년째 늦은 오후에 걸기 운동을 한다. 내 어림으로는 왕복 2km는 될 것 같은데 아내는 어림도 없다고 일축해 버린다. 50년이 넘게 같은 솔 밟을 먹는 형편에 그게 2km가 안 되면 무슨 공정과 원칙이 무너지는지 야박하게 깎아버리는 아내가 서운하기 짝이 없다.


내가 그 먼 길(?)을 갔다 오는 동안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간다.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음 직한 영감도 가볍게 나를 추월한다. 양쪽 연골이 상해서 수술해야 한다는 내 아내도 내가 너무 늦어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나하고 같이 운동하러 안 간다.


요즘은 날이 추워져서 걷는 사람도 줄었지만, 곳곳에 만들어 놓은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며칠 전 혼자서 쉬고 있는데 나보다 늙어 보이는 할머니의 한 분이 가까이 오더니,

“할아버지, 보니까 허리가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약국에서 마그네슘이라는 약을 사세 드세요.” 한다.


“먹고 있습니다”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동병상련이라는 그 정(情)은 고마운데, 얼굴을 보면 내 누나처럼 보이는데 나더러 말끝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는 게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부드러운 사람인데, 쩝


대상이 없는데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깜냥에는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문득 반백 년 전의 잠자리 사냥꾼 선생님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살아 계실 것 끌지는 않지만, 제자들에게 잠자리 사냥꾼이라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어떠셨을까 생각했다.


“너, 곧 내 뒤를 따를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악담을 안 하셨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심술만 남은 영감은 대접 받기 곤란하지만 요즘 기분이 그렇다. 내가 너무 빨리 늙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며칠만 지나면 나는 또 한 살을 더 먹잖아. 이런!


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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