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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앎은 온전한가, 그 당연한 성찰

by 임진채

내가 시골에서 고양시로 이사 온건 사십 대 중반이었다. 오자마자 사업이랍시고 일을 벌였는데 외상 거래가 많았다. 같은 날 거래한 물건도 대금을 결제받기로 한 날은 다 다르다, 장부를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했다. 전에부터 했던 일이면 손으로 쓰던 벽에다 표시하던 그런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처음 하는 일이라 새로 익혀야 했다. 잘 아는 선배에게 물었더니 컴퓨터를 배우라고 했다.


내가 부기를 생판 몰랐다는 것이 컴퓨터를 가까이할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내가 학교에 아닐 때는 컴퓨터라는 그런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애초에 개념 자체를 몰랐었고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컴퓨터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학원을 찾아가서 등록했다. 방학 중이어서 수강생은 모두 다 학생들이었다. 중 고등학생이 많았고 내 결에 앉은 아이는 대 막내아들과 같은 초등 4학년이었다.


한 달 과정이었는데 처음 열흘은 강사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말이 분명한데도 내용을 알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데이터베이스를 배우는 반이었다. 열흘 정도를 헤매다가 정신을 차린 후 강사에게 특별하게 부탁해서 내가 필요한 것만 묻고 배웠다. 거래 명세를 만든 후 수금 날짜를 순서대로 정열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주로 배운 건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법이다. 모든 명령어는 직접 수식에 맞게 입력해야 했다. 그때는 그랬었다.

말로 하니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컴퓨터를 처음 만지는 중년의 사내에게는 그 일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자신을 평가하기에는 천재급이라는 아주 후한 평가였다. 컴퓨터 하고 상견례를 한 지 한 달 만에 중구난방인 수금 날짜를 순서대로 정렬시키다니. (세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대부분이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내가 컴퓨터를 만진 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내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일단 사진을 취미로 했기 때문에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사용할 줄 안다. 내 손으로 책을 만들고 싶어서 인디자인도 배웠다. 그리고 기타 등등 제법 많은 것을 할 줄 안다고 자부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내 표현이 ‘할 줄 안다는 것’이지 '아주 완벽히 잘한다'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은 충분히 만들어놓고 있는 점이다.


20년을 넘게 사용한 내 포토샵 실력은 말 그대로 그렇고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영문판을 사용한다. 그래서 한글판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 모국어인 한글판, 그러니까 한글로 표시된 프로그램은 전혀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영어 표식을 나는 글 내용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부호로 인식하고, 그러니까 글의 내용이 아니라 수도 없이 사용해서 순서를 달달 외운 습관으로 작업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진짜 실력은 아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선들바람에도 넘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알맹이가 없는 실력은 실력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며칠 전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전할 내용이 있어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야. 그거 아주 간단해, 내 이름 점 네이버 점 컴하면 돼.”

“김 개똥을 한글로 쓴다고?”

“그래.”

“골뱅이도 없이?”

“그렇다니까. 이 자식이......”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메일의 주소 쓰는 법이 언제 바뀐 모양이다. 분명히 근래에 개정된 지식 같은데 왜 나만 몰랐지?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구는 아는 데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모르다니....

그런데, 이메일 주소가 그렇게 바뀐 게 맞긴 맞는 거야?


이것도 결국은 뿌리의 문제다. 겉으로 보이는 둥치가 아름드리라고 해서 그게 꼭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 내 앎이 허당일 수 있듯이 다른 사람도 그럴 수도 있겠다. 잘 아는 것같이 의젓한 척하지만 실은 매우 얕은 뿌리 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허상(虛像)과 같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 세상을 움켜쥐려고 용을 쓰는 한 인간처럼, 같은 서울대학교를 나왔어도 항렬(行列)이 돌(石) 자(字) 돌림이면 무식(無識)이 찬연(粲然)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올해는 기왕 간 것이니 내년부터 나는 수시로 내 앎이 온전한가에 대해 검열할 생각이다.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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