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라는 문장에 대한 원망을 나는 늙은이가 된 지금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국민학교, 아니 지금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종아리가 피멍이 들 정도로 얻어맞은 참담한 기억 때문이다.
때린 분은 담임 선생님이다. 정확한 죄명은 지금까지도 잘 모른다. “앞으로 나와서 종아리 걷어.” 해서 따랐을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 사촌 동생을 작은어머니가 낳은 것을 봤다고 우겼었다. 그래서 나도 우리 어머니가 낳은 게 분명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나는 유복자여서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고도 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그 문장의 원래 의도(意圖)를 의식적으로 곱씹어보지 않았다. 종아리를 때리다 울지 않는 나를, 마지막으로 정강이를 걷어찬 선생님의 모습이 어른거려서였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고 있었다. 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는 것이 아닌데 나는 왜 느닷없이 그 묵은 기억이 떠올랐을까?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이제 그친 것 같다.
내가 8층 밑으로 내려가서 확인한 건 아니고, 어두컴컴한 기운은 여전한데 우산을 접어서 들고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합당한 짐작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걸 사실로 확정해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러다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고약한 트라우마(trauma)를 평생 안고 갈 수도 있다.
점심때가 되었다. 밥 먹으러 가야 한다.
지금은 비는 안 내리는 것 같지만 만일을 생각해서 우산을 들고 가야 할지, 아니면 지금의 사실을 우선해서 그냥 갈지를 결정하기가 애매하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의 갈등이지?